評論 世上

月刊 『시인동네』 2019年1月號 揭載(하이쿠(俳句)는 첫꿈(初夢)이다 (連載 제10회).

김인숙로사 2018. 12. 21. 21:41

하이쿠(俳句) 제대로 읽기 (連載)

 

하이쿠(俳句)는 첫꿈(初夢) (連載 10)

 

김인숙

 

 

  세월이 쏘아놓은 화살처럼 빠르다는 클리셰를 정말로 쓰고 싶지 않지만 매년 연말이 다가오고 또 새해가 찾아오면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된다. 게다가 10대에겐 세월의 속도가 시속 10킬로미터 30대에겐 30킬로미터 50대에겐 50킬로미터의 속도로 지나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필자의 나이를 생각하면 세월이 이젠 슈퍼카의 속도로 달려가는 것만 같아 어지럽기까지 하다.

 

  그렇게 매년 찾아오는 연말연시. 이것을 키워드로 정리한다면 어떤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떠오를까? 구세군? 제야의 종소리? 세배? 연하장? 분명히 한 해가 가고 또 다른 새해가 찾아오지만 설날이라는 음력 명절이 따로 있기때문일까? 요즘의 1231일과 11일은 달력이 바뀐다는 것 이외에는 명절로서의 의미는 많이 약해진 느낌이 있다. 하지만 일본은 메이지 유신과 더불어 양력 사용이 공식화 되면서 더 이상 음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달력에서 보이는 연말연시가 절기이자 곧 명절이다.

 

   일본에도 연말연시를 상징하는 키워드들이 있다. 그리고 이 키워드들은 계절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하이쿠의 계절어로 쓰이게 된다. 계절어라는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직접적으로 계절이 드러나는 단어를 써도 상관없지만 그 계절을 암시하는 풍물시를 써서 은연중에 계절을 알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또 세련된 하이쿠의 작법 중의 하나다. 그렇다면 어떤 말들이 일본의 연말연시를 나타내는 키워드일까? 하이쿠를 통해서 하나씩 알아보기로 하자.

    

                    大掃除 のはじめに 先送

                   연말대청소 새해 시작되는데 뒤로 미루기 (작자 미상)

 

  대표적인 연말 상징 키워드는 바로 대청소(大掃除). 일본 가정에서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앞에 클 대자가 붙는 걸로 알수 있듯이 대청소란 단순한 정리정돈이나 청소로는 끝이 나지 않는 대대적인 집안 청소작업을 말한다. 어찌나 그 작업이 큰지 돈을 주고 전문 청소용역 업체에 일을 맡기는 집도 있을 정도.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몸소 청소를 하면서 한 해 동안 쌓인 묵은 때를 벗겨내고 산뜻한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한다. 그래서 연말만 되면 오전에 주부들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에 어떻게 하면 가구나 가재도구에 들러붙은 묵은 때를 쉽게 벗기는 꿀 팁들이 엄청나게 소개되곤 한다.

덕분에 청소엔 그다지 소질이 없는 게으른 필자도 TV에서 가르쳐주는 방법대로 가스레인지 후드도 닦아 보고 세면대에 쌓인 물때도 지워보면서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한다. 물론 한여름에도 대대적인 대청소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하이쿠에 이 단어가 들어가 있다면 거의 100% 연말, 핀 포인트로 집어내자면 섣달그믐을 뜻한다.

 

                      紅白やおいの

                      홍백가합전 식초냄새 짙게 밴 손가락이여 (작자 미상)

 

    또 다른 연말의 키워드는 바로 홍백(紅白)이다. 붉은 색과 흰색은 일본에서 크게 축하할 일이 있을 때 펄럭이는 축제의 색깔. 따라서 일본의 각종 행사장에 가면 흰색과 붉은 색 천을 함께 묶어서 치렁치렁 늘어뜨리는 장식물들을 자주 보게 된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인들은 홍백이라고 하면 행사장 장식물이 아닌 NHK에서 매년 1231일 밤에 방송하는 연말 노래대잔치인 홍백가합전 (紅白歌合戦 / 코오하쿠우타갓센)을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올린다. 1951년에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70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인기 가수들이 홍군과 백군 두 팀으로 나뉘어 노래대결을 펼친다는 내용의 방송으로 일본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국민 방송이다.

대청소를 끝내고 새해 음식 준비하느라 식초냄새 짙게 밴 손을 닦은 후 가족들이 모여 앉아 TV를 통해 홍백가합전을 시청하는 것. 이젠 핵가족을 넘어 1인가구가 대다수가 된 일본사회지만 여전히 일본 사회가 그리는 섣달그믐의 풍경이기도 하다.

한국에 살고 있는 내 일본인 지인들도 섣달그믐만 되면 홍백가합전을 보기 위해 위성방송이나 케이블 채널이 나오는 집에 삼삼오오 모여 파티를 즐기곤 한다. 홍백가합전을 보지 않으면 한 해가 제대로 마무리 되지 않은 것 같아 찜찜할 정도라고 읊조리는 것을 보면 아닌게 아니라 많은 아마추어 하이쿠 작가들이 이 홍백이라는 단어를 계절어에 사용하면서 하이쿠 문예지들이 고민했었다고 한다. 원래 의미가 계절과는 상관없는 홍백을 계절어로 인정해야 되는지. 하지만 홍백이 홍백가합전을 통해 단순한 색상을 뛰어넘어 연말연시를 상징하는 단어로 받아들여지면서 이젠 현대 하이쿠의 당당한 계절어로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ふるさとの出湯年越蕎麦すすり

                        고향집에서 뜨거운 목욕 나와 소바 후루룩 (臼田亜浪 / 우스다 아로)

  

  또 다른 일본의 연말 키워드는 도시코시 소바(年越しそば)라고 부르는 메밀국수다. 도시코시(年越)란 한 해를 넘긴다는 뜻. 우리는 흔히 소바라고 하면 냉 메밀을 먼저 떠올린다. 얼음 둥둥 뜬 차가운 국물에 담가 먹기도 하고 국수만 따로 건져내서 식힌 후에 국시장국에 찍어먹기도 하는 등 대체로 여름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일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여름에 소바(蕎麦/そば)를 찾기는 하지만 의외로 따끈한 국물에 담긴 소바도 적지 않다. 추운 섣달 그믐날 밤. 뜨거운 물로 목욕을 마친 후 따뜻한 국시장국에 담근 메밀국수를 끊어지지 않게 후루룩 후루룩 목으로 넘기면 새해 운도 좋아지고 무병장수한다고 그 옛날의 일본 사람들은 믿었었고 지금의 일본인들도 우리가 설날 떡국 찾듯 연말이 되면 메밀국수를 챙긴다. 개인적으로는 따뜻한 국물에 푹 불어 늘어진 소바면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 법. 나 역시 일본에서 새해를 맞게 되면 꼭 버릇처럼 도시코시 소바를 찾곤 한다.

   

                                  初夢のなかの高嶺雪煙

                                  첫 꿈에서 본 저 높은 봉우리 하얀 눈보라 (飯田龍太 / 이이다 류타

 

     새해를 맞아 일본 초등학생들에게 서예를 시켜보면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첫꿈(初夢)이다. 새해 첫날 좋은 꿈을 꾸고 좋은 기운을 받고자 하는 염원은 어느 나라나 다 마찬가지일터. 그럼 어떤 꿈이 좋은 꿈일까? 우리들에겐 조상님과 돼지가 나오는 꿈들이 좋은 꿈이겠지만 일본에선 뜬금없이도 후지산과 매()와 가지(茄子)를 보는 꿈이 길몽이라고 한다.

후지산이야 일본인들에게 단순한 산 이상의 의미를 넘어 신앙의 대상이기까지 한 곳이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날아다니는 매와 야채인 가지는 왜 길몽의 대상이 되는 걸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강력한 권력자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매사냥과 첫 수확된 가지를 몹시 좋아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운이 좋은 물건으로 여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동음이의어설. 일본어로 매를 다카(/たか), 가지를 나스(茄子)라고 하는데 동음이의어로 다카는 높다 라는 뜻을 의미하고 나스는 가지뿐만이 아니라 뭔가를 이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결국 더 높게 뭔가를 이루는 한해가 되자는 의미에서 매와 가지를 보면 길몽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건데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설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門松にひそと子遊

                                   카도마츠에 살그머니 노니는 골목의 달빛富田 木歩 / 토미타 못포)

    

  새해의 키워드로는 카도마츠(門松)를 빼놓을 수 없다. 카도마츠란 일본사람들이 정월초하루 집 앞에 내놓는 솔가지와 대나무를 엮어 만든 장식물로 새해의 좋은 기분을 집안으로 불러들인다고 알려져 있다. 역사가 상당히 오래된 장식물로 헤이안(平安)시대의 시가에도 카도마츠가 등장한다. 원래는 솜씨 좋은 장인들이 만드는 꽤나 비싼 장식물이지만 뭐든지 편리해진 요즘은 다이소같은 100엔 샵에서도 손쉽게 살 수 있다. 100엔 주고 복을 빈다는 것이 조금은 인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금액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어제 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새해를 맞고 싶은 그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일본의 연말은 망년회다 홍백가합전이다 해서 시끌벅적하지만 하룻밤 지나서 11일이 되면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해진다. 아직 설날이 오지 않은 우리들의 새해 첫날도 마찬가지다. 들떠있던 연말과는 달리 항상 조용하게 시작되곤 한다. 하지만 올해의 11일은 시끌벅적하게 시작했으면 좋겠다. 방정맞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으니까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어딘가 모르게 활기찼으면 좋겠다. 모두들 지나온 묵은해가 너무 힘들었다. 일본의 길몽이 이 땅에서 통할지 의문이지만 새해엔 모두들 매()보다 높게 가지(茄子) 보다 더 많이 이루는 그런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

김인숙 / * 2012月刊 現代詩學등단

            * 2017季刊 시와세계評論등단

            * 6한국현대시협작품상 수상

            * 7회 열린시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