評論 世上

月刊 『시인동네』 2019年3月號 (하이쿠(俳句)는 끝나지않는 여행이다 (連載 제12회).

김인숙로사 2019. 3. 23. 00:38

하이쿠(俳句) 제대로 읽기 (連載)

    

하이쿠(俳句)는 끝나지 않은 여행이 (連載 12)

    

김인숙

     



  死語가 되어 버린 말 중에 여수(旅愁)라는 단어가 있다. 여행지나 객지(客地)에서 느끼는 시름이나 아련한 감정을 뜻하는 이 말은 객수(客愁)라는 더 낡은 말로도 호환이 가능하지만 낡고 낡은 말이니만큼 이젠 아무도 쓰지 않는다. 세상이 바뀌었다. 반나절이면 전국 어느 곳이나 갈 수 있는 지금이다. 사람들에게 객지에서 느끼는 향수같은 감정이란 공감 불가능한 화석 같은 감정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이쿠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여행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하이쿠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마쓰오 바쇼 (松尾芭蕉)의 명작들이 대부분 그의 오랜 여행길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리고 하이쿠의 정서를 이해하려면 여행을 떠나봐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느껴지는 아련한 향수를 느껴봐야 한다.

    

                       五月雨をあつめて最上川

                   5월비 모아 저리 빨리 흐르는 모가미강 (松尾芭蕉 / 마쓰오 바쇼)

    

  한국보다 계절이 빠른 일본의 장마는 5월부터 시작된다. 그 장마비가 모여 도도하게 흐르는 모가미(最上)강은 일본에서 일곱 번째로 긴 강이다. 그리고 모가미강이 있는 야마가타현(山形県)은 바쇼가 살았던 도쿄에서 무려 북쪽으로 400여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곳이다.

    

                    夏草どもが

                여름잡초여 무사들이 꾸었던 꿈의 흔적들(松尾芭蕉 / 마쓰오 바쇼)

 

  이 시는 야마가타현 보다 더 북쪽에 있는 이와테현(岩手県)의 히라이즈미(平泉)라는 곳에서 읊었던 작품이다. 이제는 인기척도 없이 풀로만 뒤덮인 폐허가 되었지만 이곳은 그 옛날 전설적인 무장 미나모토노 요시쓰네(源 義経)가 일본제패의 꿈을 꾸었던 번영의 장소였다. 바쇼의 하이쿠를 엮어보면 하나의 기행문이 될 정도로 그는 여행을 즐겼다.

    

그가 왜 그렇게 여행에 집착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단순히 여행을 좋아했을 수도 있고 그저 그의 팔자에 역마살이 끼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도시전설에서 내려오는 얘기처럼 그가 사실은 도쿠가와(德川)막부의 민생 정찰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과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 뿌리를 고정시키지 못하는 부초 같은 삶에 대한 회한이 그의 시심을 움직이는 동력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여행을 꿈꾼다. 한곳에 고정되어 있는 삶이 창작을 방해한다는 핑계를 대고 싶기 때문이다. 고정된 삶은 굳어버린 사고방식을 낳고 굳어버린 사고방식은 뻔하디 뻔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마감에 쫓기기라도 하는 날엔 노트북과 짐을 싸들고 일상과 동떨어진 곳에 스스로를 가두기도 하고 조금더 유연한 결과물이 필요할 때는 무리를 해서라도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에 가서 새로운 걸 눈에 담아보려고도 한다. 그렇게 투입된 노력과 돈과 시간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닫혀있던 자신의 또다른 의식을 여는데 여행만큼 좋은 것도 없다.

 

   내가 쓰는 시는 도시적이라는 소리를 흔히 듣는다. 아스팔트처럼 딱딱하고 빌딩숲처럼 삭막하지만 막상 그런 시를 쓰기 위해 나는 자연의 힘을 빌린 때가 많았다. 강원도 정선의 좁은 오솔길과 찰랑이는 일본 오키나와(沖繩)의 해변에서 나는 그런 삭막하고 메마른 영감을 얻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행이란 나를 찾아나서는 길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예전에 어떤 명사가 자아를 찾겠다고 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한 적이 있었다. 자아는 저 멀리 해외나 관광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이니 자아를 찾는 작업에 여행 핑계를 대지 말라고. 언뜻 보면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글쎄다. 개인적으로는 절반쯤 밖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秋深をする

                   가을 깊은데 옆에 있는 사람은 뭘하는 이일까(松尾芭蕉 / 마쓰오 바쇼)

    

참으로 좋아하는 하이쿠 중의 하나다. 언뜻 보면 무슨 소리인가 싶은 뜬금없는 한수지만 가만히 음미해보면 서서히 차가워져 가는 가을날 해질 무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만나는 사람 모두가 익숙치 않은 타인일 수밖에 없는 여행길. 그나마 마을과 마을 사이의 길은 그런 타인들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외로운 여정이다. 그곳에서 맞게 되는 스산한 가을. 어쩌다가 만나는 아무 상관없는 타인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마저 궁금해질 정도로 외로운 심정.

 

   여행이란 결국 자신을 낯선 곳에 던지는 행위다. 즐거운 호기심이 있는 만큼이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수 없는 불안감이 있다. 여행지의 나는 뭐든지 서툰 사람이고 얼른 동화되지 못하는 낯선 일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도움을 그리게 되고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얻지 못한 나의 내면은 외면의 내 자신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 여행길에서 나를 찾게 된다는 건 바로 그런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제까지 내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던 나의 내면이 말을 걸어오는 때가 온다. 넌 왜 여기에 와 있니? 여기서 뭘 하고 있니? 그게 여행의 가치다. 경치 좋은 풍경과 맛있는 음식은 부수적인 소비일 뿐이다.

    

  아직 나이가 덜먹었던 30여 년 전. 마쓰오 바쇼가 걸었던 길을 따라 일본을 일주한 적이 있었다. 하이쿠 전공자로서 바쇼가 어떤 풍경을 보고 어떤 마음으로 시를 읊었는지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럴듯한 취지는 여행초반에 이미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여행길은 몇백년 전 노인네가 다녔던 여정이라고 하기엔 너무 멀었고 일정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시정을 느껴보겠다는 여유보다는 비싼 돈 내고 여기까지 왔으니 눈도장만큼은 확실히 찍고 가야겠다는 속물스런 오기만 남았다. 그렇게 힘들게 오사카 근처까지 내려갔을 때 다음의 시를 만났었다.

    

                          枯野をかけ

                     병든 몸으로 자꾸만 꾸는 꿈은 메마른 들판(松尾芭蕉 / 마쓰오 바쇼)

    

16945월 도쿄를 떠나 다시 여행길에 오른 바쇼는 오사카에 이르렀을 즈음 병을 얻고 만다. 자신이 태어났던 고향도 아니고 자신이 살던 동네도 아닌 곳에서 눕게 된 바쇼처럼 나도 오사카 근처에서 병을 얻어 몸져눕고 말았다. 참으로 멋없게도 교토에서 얻은 열사병 때문에 늘어진 것이지만 그때 읽은 바쇼의 마지막 한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메마른 들판이란 하이쿠에서 쓰이는 계절어로는 겨울을 뜻한다. 객지에서 병을 얻어 두번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몸이 되었어도 그가 꾸는 꿈은 겨울 들판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이었다. 나 역시 지겨워질 대로 지겨워진 여행길에서 병을 얻고 나서야 이제까지 지나왔던 나날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그곳에서 마주한 내 모습은 바쇼의 여정이 궁금했던 연구자가 아니라 중년의 나이가 되어 이제까지 자신의 삶이 무엇인지 궁금했던 한 사람의 여자였었다.

 

   물론 삶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답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때 여행길에서 내 자신에게 던졌던 대부분의 질문은 여전히 답이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계속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바쇼 역시 병든 몸으로 여행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그때의 바쇼 보다 훨씬 더 늙은 몸이 되었고 익숙해진 내 동네를 떠나는 일이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가끔은 여행을 꿈꾼다. 그곳에 가면 이제까지 만나지 못했던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아. 그곳에만 가면 이제까지 듣지 못했던 대답을 이번에는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아.

 

  이 글도 벌써 1년 동안 써왔다. 이것도 여행이라면 제법 긴 여행이었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 초입에는 즐겁고 자신만만하고 중반은 힘이 들고 마지막엔 기진맥진이다. 매달 한편씩 글을 써내는 것이 힘들어서 중간에 도망치고 싶어진 때도 있었고 매번 이것보다 좀 더 잘 쓸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에 다다랐다. 더 이상 마감일에 쫓기지 않아도 되고 편집자의 재촉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상하게 펜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여전히 뭔가를 더 써야 할 것 같은 기분. 아직도 할 얘기가 더 남아 있을 것만 같은 아쉬움. 그래서 하이쿠는 끝나지 않는 여행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평생 그리워하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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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 * 2012月刊 現代詩學등단

            * 2017季刊 시와세계評論등단

            * 6한국현대시협작품상 수상

            * 7회 열린시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