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 日本

日本 교토(京都) 도시샤(同志社)대학 윤동주 정지용 詩碑

김인숙로사 2016. 2. 21. 13:25

 2008年7月1日


2008년 7월 1일 교토(京都)가모가와(鴨川)

Canon EOS 350D


윤동주 정지용 시비를 찾아 가모가와(鴨川) 강변을 걷던 날

한여름 밤의 더위를 식히려는 많은 교토 시민들이 강변에 나와 운치를

즐기고 있었다.  윤동주· 정지용 두 시인의 시비를 참배하고  

그들이 공부하고 머물던 다카하라 하숙집 동네도 둘러보았다.


교토(京都)의 도시샤(同志社)대학은 윤동주 정지용 시인들의 모교이다. 

윤동주시인의 시비가 1995년 모교인 도시샤(同志社)대학

이마데가와(今出川) 교정 세워 졌다.

시비에는 한글로 새겨진 서시가 또렷하다

그 후 2005년 12월 18일에  정지용 시인의 시비도 세워졌다.

시비에는 1924년 쓴 교토시내를 관통하는 가모가와(鴨川)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가모가와(鴨川 /압천)'가 새겨져있다. 

정지용 시인이 유학시절 대표작 ‘향수’를 발표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던 모교다. 이마데가와(今出川) 교정에 윤동주시인의

시비와 함께 정지용시인 시비도 나란히 마주하고 있다.

 

Canon EOS 350D

동지사대학 이마데가와 교정에 세워진 윤동주(왼쪽), 정지용 시비(오른쪽)


윤동주 시인 詩碑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동지사 대학 안의 작은 시비에는 이 시가 육필 원고와 일어 번역문으로 새겨져 있다.

그는 일제가 태평양전쟁에 광분했던 1941년 어느 날 조국을 잃은 슬픔을 달래며

이 시를 썼을 것이다. 윤동주(尹東柱, 1917∼1945)는 북간도에서 출생하여

용정(龍井)에서 중학교를 졸업, 연희전문을 거쳐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동지사대학의 영문학부에 입학한 뒤 6달 만인 1943년 7월 14일에
한글로 시를

쓰고 있었다는 이유로, 독립운동의 혐의를 받아 체포됐다가 옥중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다. 후쿠오카 형무소 수감 상태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윤동주는 일제가 전쟁에

광분한 나머지 인체 실험을 하고 있을 때여서 항간에는 인체실험대상이 되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윤동주와 함께 체포돼 형무소에서 죽은 송몽규를 윤동주 아버지가

면회 갔을 때 송몽규는 그 두 사람이 같이 정체 모를 주사를 맞았다는 증언을 했다고 한다.  

태평양전쟁 말기 만주 731부대와 소록도 나환자 갱생원에서 생체실험을 했던 일제가
일본

형무소에서도 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토록 애타게 염원하고 가슴 졸이며 기다렸던

조국 광복을 반년 남겨 놓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사랑한 청년 윤동주는

한 많은 타국 땅 하늘 아래에서 숨을 거두었다.



정지용 시인 詩碑



鴨川 十里ㅅ벌에 해는 저물어...저물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목이 자졌다...여울 물소리.... 

찬 모래알 쥐여 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여 짜라. 바시여라. 시원치도 않어라.  

역구풀 우거진 보금자리 뜸북이 홀어멈 울음 울고, 

제비 한 쌍 떠ㅅ다, 비맞이 춤을 추어.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鴨川 十里ㅅ벌에 해가 저물어.. 
저물어... ”

정지용은 1902년 출생하여 1950년 6·25전쟁 이후 월북했다가

1953년경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시인으로 한때 국어책에는

 이름 석 자가 실리지 못한 채로 있다가 이후 월북작가라는 붉은

딱지와 함께 국어책에서 그의 이름이 완전히 사라졌었다.  

그러다 그의 이름은 족쇄가 풀리고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노래를 가수 이동원과

성악가 박인수가 함께 불러 명곡이 되면서 정지용은 우리 앞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의 “가모가와(鴨川)”란 시를 동지사대학의

시비에서 볼 수 있다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토속적인 우리말의 멋과 맛을 진하게 우려낸 정지용 시인의

고향은 충북 옥천이다. 옥천에는 정지용 생가, 지용문학관

그리고 시비공원 등 시인을 기리는 문학공간이 잘 마련돼 있다.

특히 정지용 시인의 생가는 '향수'를 비롯한 주옥같은 명작

130여 편을 탄생시킨 곳인데 시인이 자랄 때 있었던 감나무와

아그배나무가 여전하고, '향수'에 나오는 실개천도 그대로 흐른다. 

http://blog.daum.net/pine19/

 





























윤동주 정지용 시비를 찾아 가모가와(鴨川) 강변을 걷던 날

한여름 밤의 더위를 식히려는 많은 교토 시민들이 강변에 나와 운치를

즐기고 있었다.  윤동주· 정지용 두 시인의 시비를 참배하고  

그들이 공부하고 머물던 다카하라 하숙집 동네도 둘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