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순간
경각의 어머니가 파르르 흐느낀다
인간은 평생 남을 위해 혹은 남 때문에 울다가
마지막엔 자신을 위해 운다.
그때 둘러앉은 삶은 죽음을 향해 일제히 울음을 터뜨린다
먼 길을 달려 찾아 온 경각을 안심시키려
아직까지 남아있는 눈물을 다 비우려 운다
어차피 울음이란 살아서나 유용한 행위이니까,
죽어서는 자신이 지고 다닐 무게에 불과 하니까
"너무 울지들 마라,
너희들의 눈물은 곧 강을 이룰 것이고 나는 또
그 강을 오래 건너야 한다"
파르르 떨던 울음이 빠져나간 어머니는 망자의 명부에 전입되고
시신은 곧 한 채의 폐가처럼 흉흉해진다
"너희는 모두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너희들 손으론 이 폐가를 허물지 못하리라"
어디서 날아온 초라한 파리 한 마리,
망자의 콧등에 앉아 가느다랗게 떨고 있다.
북쪽으로 길을 트던 어머니가 허공에서 멈칫,
잦아든다. 죽음의 물결이 사방으로 번진다
이내 수습의 시간이 오고 집 한 채가 고요히 허물어진다
염습(殮襲)은 한쪽의 얼굴을 완전히 지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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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月刊 『現代詩學』 詩 등단
* 2017년 季刊 『시와세계』 評論 등단
* 2013년 제6회 『한국현대시협』 작품상 수상
* 2015년 제7회 열린시학상 수상
* 2020년 제5회 『한국비평학회』 학술상 수상
* 2020년 제18회 서초문학상 수상
* 2020년 제22회 문학비평협회상 수상
* 시집 『먼 훗날까지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2020년 月刊 『시인동네』 刊
詩評
울음이란 무엇인가?
반경환(시인 평론가)
울음이란 ‘울다’의 명사형으로 인간의 감정의 상태에 따라 눈물을 흘리는 것을 말하고, 울음은 또한 우는 소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자기 자신의 꿈이 이루어졌을 때에도 울고, 자기 자신의 꿈이 너무나도 완벽하게 무너졌을 때에도 운다. 너무나도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에도 울고, 자기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을 해야 할 때에도 운다. 기쁠 때에도 울고, 슬플 때에도 운다. 조용히 숨어서 울 때도 있고, 뜨거운 눈물을 속으로 삼키며 울 때도 있다.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큰소리로 울 때도 있고, 타인의 마음을 훔치려고 가짜로 울 때도 있다. 인간은 우는 동물이며, “평생 남을 위해, 혹은 남 때문에 울다가 마지막엔 자신을 위해” 울게 된다.
눈물이란 무엇인가? 눈물이란 눈동자 위쪽에 있는 눈물샘에서 나와 눈동자를 적시거나 흘러나오는 투명한 액체를 말하며, 늘 조금씩 나와 먼지와 이물질을 씻어주고, 각막에 영양을 공급해주는 것은 물론, 광학적 기능을 작용하게 해준다. 눈물은 어떤 자극을 받으면 더 많이 흘러나오고, 특히 기쁘거나 슬플 때 아주 많이 흘러나온다. 눈물과 울음은 매우 다른 것이지만, 울음과 눈물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울음은 인간의 감정 상태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에 우는 사람은 대부분이 눈물을 흘리게 되어 있는 것이다. 울음의 바다는 눈물의 바다가 되고, 눈물의 바다는 울음의 바다가 된다.
김인숙 시인의 [어떤 순간]은 경각의 순간이고, 임종의 순간이며, 어머니의 임종에서부터 염습(殮襲)까지를 역사 철학적으로, 또는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경각의 어머니가 파르르 흐느낀다”는 것은 임종을 눈앞에 둔 어머니의 심리적 상태를 말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 세상의 삶을 마감해야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와 인연을 맺은 아들과 딸들과 모든 사람들과의 최종적인 이별을 뜻하기 때문이다. 아주 짧은 순간, 즉, 임종을 눈앞에 둔 어머니가 파르르 흐느끼듯이, 이 세상의 삶은 “평생 남을 위해, 혹은 남 때문에 울다가 마지막엔 자신을 위해” 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때 둘러앉은 삶은 죽음을 향해 일제히 울음을 터뜨린다”는 것은 “먼 길을 달려 찾아 온” 자식들이 이 세상을 떠나가는 어머니를 안심시키려 우는 모습들을 말하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눈물을 다 비우려 운다”는 것은 어머니가 눈물을 다 비우고 떠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울음이란 살아서나 유용한 행위이고, “죽어서는 자신이 지고 다닐 무게에” 지나지 않는다.
“ 너무 울지들 마라,
너희들의 눈물은 곧 강을 이룰 것이고
나는 또 그 강을 오래 건너야 한다”
이 말은 경각의 순간에 파르르 흐느끼던 어머니가 그 울음을 멈추고 자식들에게 한 말이며, 너희들이 너무 울면 눈물의 강이 되어 자기 자신이 그 강을 건너가기가 힘들어진다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이윽고
“파르르 떨던 울음이 빠져나간 어머니는
망자의 명부에 전입되고,
시신은 곧 한 채의 폐가처럼 흉흉해진다.”
살아 있을 때는 천하도 좁다고 지랄발광을 하던 황제도 죽으면 기껏 시체에 불과하고, 그토록 오래 살고 싶어서 온갖 명약을 다 찾아 다녔던 인간도 죽으면 기껏 시체에 불과하다. 삶은 더없이 아름답고, 죽음은 더없이 흉흉하다. 살아 있는 자는 역동적이고, 죽은 자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다. 요컨대 “너희는 모두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너희들 손으론 이 폐가를 허물지 못하리라”는 어머니의 호언장담도 그 어떤 힘도 쓰지를 못하고, “어디서 날아온 초라한 파리 한 마리”마저도 “망자의 콧등에 앉아 가느다랗게 떨며”, “북쪽으로 길을 트던 어머니”도 잠시 멈칫하다가 허공으로 잦아든다. “죽음의 물결이 사방으로 번”지고, 어머니란 집 한 채가 조용히 허물어지고, 어머니의 삶과 형상을 지우는 염습은 이내 끝난다.
어떤 순간은 경각의 순간이고 임종의 순간이며, 어떤 순간은 이별의 순간이고 울음의 순간이다. 어떤 순간은 눈물의 순간이고 산자와 임종을 맞이한 자의 대화의 순간이고, 어떤 순간은 죽음의 순간이고 어머니라는 집 한 채를 완전히 비우는 염습의 순간이다. 김인숙 시인의 [어떤 순간]은 삶과 죽음에 대한 역사 철학적인 명상의 순간이며, 그 순간을 허무하게, 아니, 그 허무함을 위대하게 미화시키는 순간이라고 할 수가 있다.
예컨대,
경각의 어머니가 파르르 흐느낀다
인간은 평생 남을 위해 혹은 남 때문에 울다가
마지막엔 자신을 위해 운다.
그때 둘러앉은 삶은
죽음을 향해 일제히 울음을 터뜨린다
먼 길을 달려 찾아 온 경각을 안심시키려
아직까지 남아있는 눈물을 다 비우려 운다
어차피 울음이란 살아서나 유용한 행위이니까,
죽어서는 자신이 지고 다닐 무게에 불과 하니까
“너무 울지들 마라,
너희들의 눈물은 곧 강을 이룰 것이고
나는 또 그 강을 오래 건너야 한다“
파르르 떨던 울음이 빠져나간 어머니는
망자의 명부에 전입되고
시신은 곧 한 채의 폐가처럼 흉흉해진다
“너희는 모두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너희들 손으론 이 폐가를 허물지 못하리라“
어디서 날아온 초라한 파리 한 마리,
망자의 콧등에 앉아 가느다랗게 떨고 있다
북쪽으로 길을 트던 어머니가 허공에서 멈칫,
잦아든다. 죽음의 물결이 사방으로 번진다
이내 수습의 시간이 오고 집 한 채가 고요히 허물어진다
염습(殮襲)은 한쪽의 얼굴을 완전히 지우는 일이다
위 詩句들의 잠언과 경구들은 그의 인식의 깊이를 말해주고, 이 최고급의 삶의 지혜들이 그 위대함의 순간에 밤하늘의 별들처럼 반짝인다.
김인숙 시인의 [어떤 순간]은 임종의 순간이고 위대함의 순간이며, 최고급의 지혜들이 밤하늘의 별들로써 반짝이는 순간이라고 할 수가 있다.
詩論 반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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