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홍배 시인과 떠나는 추억의 간이역
치악역에서 만곡역까지 (제3회)
반곡역으로 가는 길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몇 번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지만 모른다고 한다. 기차 세대가 아닌 젊은이들은 반곡역의 존재조차 모른다. 지도를 아무리 살펴봐도 길은 지도 속으로 꼭꼭 숨는다. 지금까지 반곡역에 대하여 인터넷이나 다른 책들에서 얻은 자료들은 내게 있어 지도 속의 길이 극복해야 할 과제일 뿐이다. 어쩌면 여행은 지도 안에서 나와 지도 밖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얼마를 걸었을까. 과일 행상 할아버지에게 물으니 역으로 들어가는 길을 한참이나 지나왔다고 한다. 다시 오던 길을 내려간다. 뜨거운 봄볕에 몸 속의 수분이 마르고 단순한 생각마저도 증발해 버렸다. 나는 끝없는 모래 길을 하염없이 걸어가는 한 마리의 짐승이다. 몸뚱이는 메마른 봄날의 풍경이 되어간다. 풍경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이어서 아무것에나 진정으로 자신을 열어 보일 때 비경이 아닌 하찮은 것이라도 감각의 창을 통해 신비함으로 향수(享受)되는데, 그것은 우리가 기대하는 감각의 조건이 아닌 정신과 육체를 대상에 대하여 완전히 개방함으로써 가능하다. 오늘처럼 황사가 심한 날, 모래바람이 갖는 물리 화학적 성질에 대한 내 몸의 원초적 반응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흙바람 속에 아른거리는 과거의 어떤 추억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들어가면 황사는 단순한 모래바람이 아닌 우울한 상처 덩어리로 나의 내부로 밀려오고 나는 황사의 정조(情調) 안에서 특별한 위안을 얻는다.
영서방송(YBN) 앞을 돌아 이십 여분 걸어가니 반곡역의 이정표가 나온다. 반가움에 카메라를 들어 몇 컷이나 찍는다.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5분 정도 더 올라가자 깊은 산 속에 은둔한 절간 같은 간이역이 나타난다. 강원도 원주시 반곡동 154번지, 인가와 멀리 떨어진 산중에 역은 왜 있는가. 아마 1941년 처음 역을 지을 당시엔 이곳이 인가의 중심이었을 것이다. 현대문명의 홍수에 집들이 하나씩 떠내려가고 역은 저만큼 홀로 서있는 것이리라. 역의 입구에 서서 산 아래쪽을 내려다본다. 멀리 원주 시가지의 회백색 문명의 파도가 금방이라도 밀려와 조그만 고도 같은 역을 휩쓸어갈 것 같다. 역의 마당 안으로 들어선다. 아, 아련한 기억 속의 고향을 찾아가려면 누구나 한 번은 거쳐 가야 할 것 같은 반곡역, 열차를 타고 지나가다 잠들기라도 하면 다시 돌아와 눈을 떠서 반드시 보아야 고향으로 돌아가는 입구를 찾을 것 같은 그런 역이다. 그래, 나는 너무 늦게 찾아왔다. 내 유년의 고향을 떠날 때 눈물 같은 빗물을 흘리던 옛집 지붕의 물매를, 그 슬픔의 각도를 저 간이역의 지붕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구나. 하루에 한 번도 가슴의 문을 열지 않았을 것 같은 대합실 앞 늙은 벚나무는 어머니의 치마 자락처럼 넓은 마당에 희미한 꽃망울을 터트려 내 잊었던 유년의 말들을 술렁이며 어디까지 풀어놓을 것인지, 어깨 위로 가지 하나를 그윽하게 내린다.
지금껏 전국의 간이역들을 두루 돌아보았지만 봄의 반곡역의 아름다움은 그 중 으뜸이다. 벚꽃이 만개한 간이역은 텔레비전에도 소개되어 신혼부부들의 웨딩 사진 촬영 장소로 인기가 높다. 흐드러진 벚꽃 아래 서서 하늘을 본다. 한낮인데도 꽃 빛이 너무 환해 하늘이 캄캄하다. 하늘이 흘러내려 내 몸은 어둠에 묻힌다. 누구나 어둠 속에 서 있으면 자신만의 종교를 갖게 되는데 저 눈이 부시도록 하얀 꽃잎에 빛을 잃은 하늘조차도 강력한 마성(魔性)적인 흡인력을 지닌 교리와도 같아서 육신을 감동으로 진동시킨다. 지금까지 온종일 걸은 고통의 순간까지 피안의 세계로 다가온다. 두 그루의 벚나무 중 더 오래된 벚나무는 꽃을 피우는 일이 힘에 겨운지 꽃송이 몇 개를 잠시 가슴에 품었다가 이내 떨어뜨리고 꽃이 있던 자리엔 동그란 허공들이 매달린다. 여기선 그리움에도 질서가 있어서 그리운 것들은 두 줄기 철로 위에서 서로 평행을 고집하다 열차가 지나갈 때면 단 한 번의 떨림으로 나무의 허공 안에 반짝여 들어가 별이 되어 뜨는데 나의 별은 하늘도 없이 떠오른다.
사람들 돌아간
무인의 역사
저녁은 오고 흙바람 불어
어린 꽃잎들 떨어지네
바람에 날리는
꽃잎들
반짝이다
별이 되는 곳 거기
어둠이 흘러내려
온 몸을
캄캄한 하늘로 채울 때
두 줄기 철로
그리움의 질서
안으로 걸어 들어간들
나의 하늘에
별이 떠서
어지러운 꽃이라도 피워보겠나
아, 내 울음 가파른
저 세월 넘어
꽃잎들은 날아드는데
나의 별은
단단한 땅 속에서 떠오르네
역의 넓은 마당 어디선가 한 무리의 붉은 닭들이 나타난다. 아, 얼마 만에 보는 토종닭들인가. 수탉으로 보이는 덩치가 큰 녀석이 발을 탕탕 두드리며 낯선 객인 내게 시위를 한다. 나의 눈빛에서 안도의 느낌을 받았는지 놈은 먼 하늘을 바라보며 힘차게 운다. 우렁찬 울음의 끝에서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의 소리를 듣는 것은 나만의 느낌인가. 닭은 두 날개로 제 몸을 탁탁 두세 번 치고 날아갈 듯 하늘을 향해 운다. 닭이 고개를 들어 우는 것은 먼 조상의 고향인 하늘을 눈 가득 담기 위함이다. 닭은 울 때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닭의 눈에선 하늘이 눈물이다. 녀석의 눈 속을 들여다본다. 날개를 잃어버린 새의 눈 안엔 한없이 깊고 맑은 하늘이 고여 있다. 다시 수탉이 운다. 새의 울음 안이 내 잃어버린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더라도, 새의 붉은 벼슬이 고향으로 가는 내 등을 비쳐주는 후광(後光)이 아니더라도 더 늦기 전에 고향으로 가는 마지막 역을 새의 눈물마른 눈으로 보아두기 위해 나는 카메라의 건조한 렌즈를 조용히 들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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