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홍배 시인과 떠나는 추억의 간이역
장항선 (제2회)
-서해의 우울
안면도로 가는 지방도로는 휴일을 맞아 도시를 탈출하는 자동차들로 붐빈다.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은 타인의 중심으로부터 자신의 중심으로 이동해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지금 막 타인의 세계에서 빠져나온 그들의 표정은 뭔가 겁에 질려있다. 지금까지 익숙해온 거대한 집단의 일상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온 것이다. 태양은 서쪽으로 이미 많이 기울었다. 서해는 오후의 세계다. 단순히 태양이 동에서 서로 이동하는 자연 현상에 대하여 갖는 인식의 폭에 우리 인간 정신의 운동의 폭이 오버랩되어 탄생하는 정의 세계다. 태양이 정오를 지나면 서해의 자연은 인식의 세계로부터 생명과 무생명의 독자적 존재성과 편협함을 박탈당하고 상호 대립으로 조정되는 우리 인간의 정의 세계로 진입한다
드디어 안면도다. 한낮의 열기와 밤의 정적이 대립하는 최전선을 넘었다. 안면도 초입의 첫 항구인 드르니 항을 들렀다. 출항을 기다리는 작은 배들이 붉은 깃대를 꽂고 물결에 어떤 동경의 몸짓으로 흔들린다. 이 동경은 안면도가 섬이 되기 전, 그러니까 육지로부터 잘려 나와 섬이 되기 이전의 이곳 형상으로부터 일깨워지는 심리 상태이다. 작은 포구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낮은 수평선은 붉은 노을과 타다 남은 재 같은 섬들을 포용하면서 우리의 영혼 안으로 밀려들어와 정의 만조를 이루며 출렁이는데 이곳 서해의 사물들은 우리의 영혼 속에서 비애의 근원적인 배경으로 형상화되는 힘을 갖는다. 따라서 서해의 햇빛과 바람 갯벌은 서로를 속박하거나 방임하지 않으면서 상대로부터 추방되는 위태로운 위안을 준다. 안면암(安眠庵) 앞 바다에 떠 있는 부교(浮橋)를 걸어보라. 출렁이는 것은 부교가 아니라 위태로운 위안의 바다 위에 외롭게 떠서 흔들리는 우리 중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소주를 마시고
안면암 浮橋를 건너는데
썰물이 빠져나간 갯벌 위를
게가 한 마리
기우뚱 걸어가네
가슴팍에 발자국을 찍으며
몸 안으로 가는 길
한 번이라도
바르게 걸어본 길은
휘휘 지우며 가네
산다는 것은 살아온 길을
지우는 일이라고 게가
흔적 없이
뻘 속으로 사라질 때
내 몸 안에서 수 천
수 만의 길 흘러나와
물 위에 떠서 흔들리네
저무는 하늘을 빠져나온
햇살이
딸랑딸랑
텅 빈 내 몸 속을 다녀간다네
황도의 가장 높은 곳, 천수만의 푸른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당집이 서 있다. 주변의 늙은 나무들로 보아 족히 이삼백 년의 연륜은 가진 것 같다. 해마다 정월 보름이 되면 이곳에서 풍어제가 열린다. 당집 안엔 풍어를 기원하는 문구들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렌즈를 통해 비쳐지는 문구들의 의미를 나는 해독할 수 없다. 그것들은 신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신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선 인간의 말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내겐 버릴 인간의 언어가 없다. 나의 무의식 속엔 잘 정돈된 물신(物神)의 레일이 깔려있고 나의 의식은 그 위에 정교하게 기숙(寄宿)한다. 따라서 나의 입을 통해 말해지는 언어는 단지 공기의 흐름일 뿐 언제나 다시 나의 몸 속으로 흡입해 들어가는 것이어서 내 몸 속엔 시커먼 기계의 피가 흐른다.
꽂지의 일몰을 보기 위해 발길을 재촉했다. 일몰이 시작되기 전까진 이곳의 태양과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사람들은 각각 하나의 객관적 사실로 존재한다. 그러나 해가 지기 시작하면 이 객관적 사실들은 하나로 결합되어 상호 충동에 의해 존재의 공간으로 생겨나는데 이 공간은 우울과 슬픔으로 채워져서 암흑의 침묵 속으로 서서히 함몰한다.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내부에서 밀어 올려지는 슬픔의 광휘에 희열을 느끼며 이곳의 풍경과 동화된다. 서해의 바다는 해가 지고나면 몇 개의 얼굴을 드러낸다. 얼굴은 사물 형상의 표상이다. 얼굴이 인간이나 동물에게 하나의 면상(面象)으로 각인되는 것은 그것에 대한 우리의 정신반응 현상을 의미한다. 이곳의 밤의 얼굴은 사랑의 마성을 지녔다. 사랑의 슬픔에 젖은 사람들은 사랑의 마성에 장악되어 그의 영혼은 밤의 언어에 굴복한다. 밤의 언어는 분노와 치유의 양면성을 지닌다. 사랑의 분노는 고독의 변방에서 사랑의 중심으로 잠입해 들어가려는 특성으로 인해 언제나 치유와 대립하면서 원시의 외로움과 연합한다. 따라서 밤의 언어는 일종의 고독의 방언인 것이다.
홍성역에서 저녁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 열차의 헤드라이트가 난입해 들어오는 어둠에 차가운 기계의 공격성을 드러낸다. 내 의식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빛의 찌꺼기들이 불규칙적으로 발산하는 산란광에 좀처럼 잠은 오지 않는다. 생의 마지막 고갯길을 오르는 통일호 열차의 심장소리는 느리고 희미하다. 이제 자정 지나면 어느 때 격렬하게 몸을 흔들어 심장의 박동을 부활시킬지, 넓은 평원을 달리던 열차의 이상은 어느 하늘 아래 흩어져 전설로만 허공에 떠돌아야 하는지, 돌아오라, 돌아오라 부르는 사람 없는데 마지막 열차는 사람들의 가슴에 기적소리를 남긴 채 영원히 정지한다. 정지한 열차는 주변으로 적막을 확대해 나가 주변의 소음과 대립하며 자신의 적막으로 소음을 이내 제압한다. 모든 사물은 기능이 정지하거나 파괴당할 때 적막 속에서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다. 그러므로 통일호 열차는 멈춘 게 아니라 계속 달리는 것이다. 지친 승객들은 폐윤전기에서 이탈한 활자처럼 지난 수 십년의 추억의 궤적 위에 충동적인 족적을 찍으며 어둠속으로 흩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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