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간이역

배홍배 시인과 떠나는 추억의 간이역 (2) / 치악역과 반곡역 (제1회)

김인숙로사 2016. 4. 9. 02:37

배홍배 시인과 떠나는 추억의 간이역

치악역에서 만곡역까지 (제1회)

 

-고향으로 가는 마지막 역을 찾아

 

멀리 황사에 감싸여 있는 치악산은 몽환에 잠긴 듯 모래바람 속에 아련하다. 수많은 전설과 사찰을 안고 있는 산은 충청도의 계룡산과 더불어 그 이름만으로도 신비스럽다. 그러나 봄의 계룡산이 무속이란 토속적인 우월감으로 사람들의 환상 속에서 장중하다면 강원도의 치악산은 낮은 계곡을 깎는 물소리와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와 전설 속의 절간 처마 끝 풍경(風磬)소리가 하나가 되어 육체와 영혼이 만나는 자기 성찰의 사유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가까이서 보면 치악의 봄은 젊고 발랄하다. 바위들은 무질서하고 계곡은 협소하나 돌 틈에 뾰족이 꽃망울을 내미는 산도화나 개울 위로 가지를 늘어뜨린 개나리는 젊은 산이 갖는 통념 속에 내재된 양기(陽氣)가 치악이란 신비한 음기(淫氣)로 억압될 때 언제라도 창조적인 아름다움으로 앙상한 산의 능선을 뒤덮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기대하는 이미지의 환상 속에 다시 속을 줄을 알면서도 카메라를 들어 치악의 봄을 조망한다. 이 신비한 억압으로 인해 내 젊음의 결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지금 나는 치악역의 승강장에 홀로 서있다. 이따금 열차는 지나가지만 서는 열차는 없다. 타고 내리는 사람이 없으니 사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디선가 풍경(風磬)소리가 들린다. 역의 바로 뒤 바위 위에 숨은 듯 보이는 듯 기묘하게 서 있는 암자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바람 같은 간이역은 자신의 한 모퉁이를 열어 풍경소리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암자의 풍경(風磬)이 되어 지나가는 한 줄기의 바람에도 자신을 울려 소리로서 존재를 알린다. 아무도 없는 역사(驛舍)를 서성이는 바람이 발간 팔꿈치로 옆구리를 슬쩍 치고 지나간다. 무질서한 내 정신의 지층은 가지런히 정리되고 몸 안 깊은 곳으로부터 영혼이 공명하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소리는 하늘의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걸린 바람역의 일부가 되어 나의 영과 육의 접점에 고요히 머문다. 나는 치악의 한 가운데로 깊숙이 들어온 것이다.

 

 

이 무인의 역에서 원주 방향으로 향하는 철길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산을 휘감는다. 철길을 따라 얼마를 걸었을까. 이마에서 땀이 흐르고 숨이 막힌다. 문득 치악에 얽힌 선비와 까치 전설이 떠오른다. 치악의 신비를 헤쳐 넘겠다는 인간인 나의 오만함을 산은 전설 속의 뱀이 되어 완만한 경사로 서서히 죄어오는 것이다. 저만큼 터널의 입구가 거대한 뱀의 그것처럼 암흑의 아가리를 쫙 벌린다. 터널 안에서 두 줄기의 녹슨 레일이 빠져나와 뱀의 붉은 혓바닥처럼 날름거린다. 절망이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상원사의 범종을 맨머리로 부딪쳐 나를 구원해 줄 새는 없는 것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소나무 가지 위에 까마귀가 앉아 까악 까악 운다. 새는 허공으로 날아오르지 않는다. 그 옛날 우리나라 어디에 흔하던 까마귀, 이젠 깊은 산골짜기로 숨어 들어와 인간을 위해 날아오를 허공을 잃어버린 새는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방어하는 분노의 울음을 내 머리 위로 떨어뜨릴 뿐이다. 그러나 이 무모한 여행객에 연민이라도 느끼는 듯 산은 새의 울음이 내 혼미한 의식 안으로 흘러 내려와 감각과 만나는 곳에 이르러 금대 마을로 내려가는 희미한 샛길을 내어준다.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조그만 산골마을은 살구꽃과 복숭아꽃이 한창이다. 다른 곳은 아직 개화가 이른데 첩첩 산골인 이곳은 벌써 봄꽃이 흐드러졌다. 온통 꽃으로 뒤덮인 마을길을 걷는데 갑자기 외로움이 엄습해온다. 봄날의 꽃은 내면으로부터 만발한 삶의 고통이다. 땅이 척박하고 목숨을 이어가기 어려운 환경일수록 그 곳에 사는 것들은 생명에 대하여 집착한다. 돌투성이인 이곳은 다른 곳보다 먼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며 외로움을 느끼는 나는, 내면에 만발한 삶과 사랑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떠돌며 나 아닌 다른 것의 외부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이타주의자인가 보다. 나의 여행은 이 외로움을 대신 앓아 줄 대상을 찾아 헤매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울가에 앉아 흐르는 물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철 늦은 산수유가 가지를 늘어뜨려 내 노란 빛깔의 콤플렉스 안을 들여다본다. 차가운 개울물과 물살 위에 튀어 오르는 햇빛방울들과 파란 하늘이 복합적인 내 무의식의 검은 배경을 이루는 동안 나는 단단한 바위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