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강좌

절망에서 피어난 천재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 展

김인숙로사 2016. 2. 8. 11:57

2015年8月7

쏟아지는 땡볕 보다 지긋 지긋한 열대야를 잊으려고 만난

피카소도 극찬한 천재 여성 작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

절망의 씨앗 에서 예술을 꽃 피운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그녀의 삶에 숙연한 묵념을 드린다.

- haiku -


초현실주의 작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 의 작품을 만나다.


일시 : 2015.06.06~2015.09.04

장소 :  소마미술관


本 전시는 20세기 초현실주의 작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 / 1907~1954)의 절망적인 삶과 사랑에서

예술혼으로 피어난 멕시코 국보급 작품들을 중심으로 그의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와의

사랑과 예술적 동맹, 멕시코의 혁명사와 당대 멕시코 작가들의 작품을 포함, 회화, 드로잉, 사진 및

상 등 총 100여점 작품을 선보인다.특히 프리다 칼로의 인생을 모티프로 한 영화 '프리다'와 다양한 다

큐멘터리 영상, 프리다 칼로가 사용하던 장신구와 재현된 의상 등을 포함하고 있어 흥미로운 감상이

가능한 전시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 / 1907~1954)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는 독일, 인디오, 스페인, 멕시코 혼혈로 태어났다. 갈매기처럼

붙은 검은 눈썹, 도전적이면서도 처연한 눈동자, 온몸에 흘러내리는 피. 초상화 속 여인은 세상의 모

든 절망을 경험한 듯 보인다. 하지만 절망적인 인생을 살아왔던 여인은 그림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어로 평화(Friede)라는 의미의 이름과는 달리 숙명처럼 정반대의 인생을 살아온 여인 프리다 칼로.

이는 초상화의 주인공이자 극적인 인생을 살았던 한 여류화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Frida Kahlo & Diego Rivera(결혼식), 1931년 作 / (왼쪽)Kahlo & Rivera 의 실제 모습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를 너무나 사랑한 프라다 칼로(Frida Kahlo)에게 다에고는

인생 전체를 던져 하나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리베라 또한 그녀가 영혼의 반쪽이라

고 여겼다. 그러나 프라다에게 디에고는 사랑으로 이념으로 영혼으로 하나가 되었지만

결코 자기 것은 되지 않는남자였다. 훗날 프라다는 이렇게 말했다. "일생동안 나는 두번

번의 심각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하나는 18살 대 전차에 의해 부서진 척주는 20년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죠. 두번째 사고는 바로 디에고((Diego)와의 만남입니다."   프라다는 디

에고의 아이를 낳고 싶었지만 교통사고로 다친 그녀의 몸은 아이를 품지못했다.


<버스(The Bus)>, 1929년 作 Oil on canvas. 26x56cm. Dolores Olmedo Foundation, Mexico City, Mexico.

1925년 9월 17일 오후. 버스로 귀가하던 프리다는 끔직한 교통사고를 당한다. 전차와 충돌한 버스의

용 손잡이가 달려있던 쇠파이프가 그녀의 몸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끔찍한 사고에 프리다를 진

찰한 의사들은 그녀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척추는 허리부분에서 세 군데가 부러지고

대퇴골의 경부가 부러지고 갈비뼈도 마찬가지였다. 왼쪽 다리에 열한 군데의 골절상을 입었고, 오른발

은 짓이겨져서 탈구되었다. 왼쪽 어깨가 빠졌고, 골반 뼈도 세 군데나 부러졌다. 버스의 쇠난간이 그녀

배를 뚫고 들어가 왼쪽 옆구리를 관통해서 질을 통해 다시 빠져나왔다.”



<원숭이와 함께 있는 자화상(Self-portrait with Monkeys)> 1943년 作, Oil on canvas

짙고 두꺼운 눈썹, 정면을 응시하는 강렬한 눈빛, 붉은 입술의 프리다 칼로(Frida Kahlo)

의 자화상이다. 칼로의 자화상에는 그가 처한 육체적 고통과 시련이 초현실적으로 묘사

되어 있다. 칼로는 "나는 너무나 자주 혼자이기에, 또 내가 가장 잘아는 주제이기에 나를

그린다" 라고 말했다. 本 전시에는 칼로의 자화상 6점이 선보인다. ‘원숭이와 함께 있는 자

화상' 6점이 선보인다. 거미원숭이4마리가 칼로의 몸에 매달려 있는 이미지를 그린 작품으

로 이 원숭이들은 칼로가 지도했던 4명의 학생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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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ride Frightened at Seeing Life Opened, 1943년 作, Oil on canvas,

수박은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칼을 따라 붉은 입 꼬리가 길게 찢어지며

벌겋게 터진다. 과육에 박힌 새까만 눈알들이 그녀를 노려보더니 하나 둘씩 작

은 벌레로 변하여 칼을 피해 도망간다. 아무렇지도 않게 새까만 개미가 붙은 수

박을 와삭 베어 문다. 새까만 개미들은 물기 많은 빨간 대지 위에서 우왕좌왕했

다. 나는 우리에 갇혀버린 초록별이고, 너는 절대로 내게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붉은 입은 달콤한 목소리로 노래하듯 속삭인다. 


Self-Portrait with Bed(Me and My Doll), 1937년 作, Oil on metal

 모든 것을 체념한듯이 굳게 다문 입술의 자화상을 그린 프리다 칼로((Frida Kahlo)

세번의 유산과 오른쪽 다리 절단, 신장병, 폐결핵, 일곱번의 척주 수술, 우울증

으로 일생 앓았다. 그녀의 자화상은 괴로움의 시작과 끝이 연결되어 있으니 그녀

자화이 의문스러운 얼굴일 수 밖에 없다. 그녀의 자화상은 신체의 고통만이 아니

라 끊임없는 사랑과, 잃어버린 아이들을 잊지 않으려는 욕망이 충족되지못한 괴로

움도 담고있다.


<내 마음속의 디에고(Self-portrait as Tehuana or Diego in My Mind)> 1943년 作,

   Oil on masonite,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어릴 때 당한 교통사고 때문에 예술에 전념할 수 있

었다. 그리고 인기 민중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와 결혼해서 서로에

게 눈동자가 되었다. 자화상에는 프리다 칼로의 이마에 3번째 눈으로써 디에고

의 얼굴이 그러져 있다. 활동적인 디에고는프리다가 세상을 내다보는 채널이였

다. 그래서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우주, 지구(멕시코, 나, 디에고, 숄로틀이 어우러진 사랑의 포옹(The Love

Embrace of the Universe, the Earth (Mexico), Diego, Me, and Senor Xolotl)>

1949년 作. Oil on canvas. 69.8x60.6cm Private collection

멕시코 신화에 기반을 둔 작품으로 프라다 칼로(Frida Kahlo)는 자신과 남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와의 관계를 신화적으로 형상화했다. 우주의

화 속에 어머니인 대지(멕시코)안에서 붉은 원피스를 입은 프리다가 어머

처럼 이마에 눈이 하나 더 그려져 있는 디에고를 아기처럼 품에 안고 있는

습이다. 숄로틀은 멕시코 신화에 등장하는 죽음을 피해 다니는 동물로, 조

와 사랑 속에 숄로틀마저 대지(멕시코)의 팔에 안겨 잠을 자고 있다.


<희망 없이(Without Hope)>, 1945년 作, 캔버스에 유채, 28x36cm.

마치 절망을 토해 놓은 것 같은 병상 침대 위의 프라다 칼로(Frida Kahlo)의 모습,

더없이 추함과  잔인함이 대담하게 표현 되었다. 프라다 칼로(Frida Kahlo)는 원

는 것들을 많이 가지지 못한 삶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남자가 자신만을 사랑하지도

않았고, 임신이 몇 번 되었지만 모두 유산되어 그토록 바라던 아이를 단한 번도 갖

지 못했다. 프라다가 가진 것은 평생 원하지도 않았던 신체적 결함과 병 뿐이었다.

점점 건강이 악화된 그녀는1953년 오른쪽 다리마저 절단했다. 1945년죽으면서

프라다 칼로(Frida Kahlo)는 일기를 남겼다.

"나는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상처 입은 사슴>1946년 作, 나무에 유채, 22.4x30cm, Collection of Mrs.

Carolyn Farb, Houston

그림 ​속의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모습은 비록 온몸에 여러 개의 화살 때문

피를 흘리고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듯 시선은

매우 투명하고 강한 빛을 발하는데 이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자신의 고통이

오히려 예술로 승화되었음을 나타낸다.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이 대두되면서

그녀의 존재가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1984년 멕시코 정부는 그녀의 작품

을 국보로 분류하였다.


부러진 척추(Broken Column)>, 1944년 作, 캔버스에 유채, 30.5X40cm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육체적 고통을 반영한 작품으로 이 무렵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몸을 추스르기 위해 갖가지 재료로 만든 코르셋을 입었다.버스와 전차의 충돌로 옆구리를 뚫

고 들어간 강철 봉이 척추, 골반, 허벅지까지고통스럽게 했던 사고를 그대로 그렸다. 사고로

몸이 망가진 이후 프리다 곁에서 벗이 되었던 사람이 그녀 자신밖에 없었기 때문에 항상 홀로

있었던 프리다는 자화이나 그녀 스스로의 모습을 몹시도 고통스러우며 외로운 존재로 묘사

했다. 그러나 그녀는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 여전히 자신의 길을 묵묵히 달렸다.


<두 명의 프리다>1939년 作, Oil on canvas, 173.5 x 173 cm, Museo de Arte

Moderno, Mexico City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깊은 고독 속에 잠겨서 내면에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 놓고

항상 그 분신과 함께 했다. 멕시코 전통 의상인 테후아나를 입은 실제 모습과 흰 드레스

를 입은 프리다의 분신이 나란히 앉아 있다. <두 명의 프리다>의 심장은 하나의 혈관으

로 연결되었지만 그 혈관의 끝은 분리되어 있다. 흰 드레스를 입은 분신의 혈관은 그녀

의 손에 든 가위와 피로도 볼 수 있듯이 프리다는 이제 는 더 이상 살아있지 않음이다.

프리다는 자신의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화상을 그린 것을 볼 때 그 당시 개인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뿌리(Roots/raices)>, 1943년 作, Oil on metal, 30.5x49.9cm

1943년을 전후한 시절은 프라다 칼로(Frida Kahlo)가 행복한 시기였다. 주인공 프라다가 디에고와의

결합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화산이 많은 그녀의 조국 멕시코의 대지위에 뿌린 내린 식물과 그녀의

핏줄이 얽혀 서로 교류하고 있다. 그녀의 예술의 뿌리가 어머니 대지(멕시코)이며 인간의 삶과 죽음

이 자연과 연결된 것을 의미한다. 그녀의 작품이 많지 않아 미술시장에 나오는 경우가 드물지만 이

그림은 2007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560만 달러 거래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