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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動車 運轉 <2006年 4月 21日 金曜日 淸 >

김인숙로사 2016. 1. 24. 11:46

自動車 運轉  

 

                                 2006年 4月 21日 金曜日  淸
  
 
  나는 70年代 初에 이미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그것도 一種普通으로 그 당시에는 내겐 별로 쓸 소용이 없었지만 무엇이든 새로운 것은 가져야만 하는 내 성격 탓이였다.
  살아가면서 내 이름으로 꼭 두 번 차를 샀다. 처음 차는 80年代 末에 새 차를 사서 겨우 연습 단계에 있는데 서울로 대학을 간 큰 아들이 주말에 집에 내려와서 차를 좀 몰아 보더니 차를 욕심을 내서 선물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그냥 뺏기고 말았다 . 그렇게 그 차는 삼남매가 전부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길에 오를 때까지 무려 10년 동안 아무 말 없이 서울에서 봉사를 했다.
  그러다가 90年代 末에 또 욕심을 내고 차를 샀다. 비로소 my car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그러나 나의 시련은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 누구보다도 염려가 많은 남편은 내가 혼자서 차를 몰고 나가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내가 운전을 해도 남편은 옆에서 잔소리를 하고 함께 참석을 할 수 없는 회합에는 차안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렸다. 이건 내 차를 두고도 운전 한번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학교에 출근할 때만은 나를 운전하게 했는데 그것도 내 차는 앞세우고 남편은 본인의 차를 몰고 뒤 따라와서는 내가 학교의 parking lot에서 안전하게 하차하는 걸 보고서야 본인의 차를 돌려서 학교로 출근을 하곤 했으니 내가 차를 몰고 가도 내가 운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형편에 당신이 병을 얻었으니 아예 내 자동차 key를 압수 해 버렸다. 마지막 순간에 숨을 몰아 쉬면서도 "너희 엄마에게 절대 운전하게 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고작 자식들에게 남긴 유언이었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정신이 없는 가운데 두 형제는 차 두 대를 각각 몰고 가서 car dealer에게 맡기고 입금한 통장을 내게 내밀며 "엄마는 지금부터 이 돈으로 call taxi를 타세요. 그래야만 아버지도 편히 잠드실 것이고 우리도 외국에서 안심이 됩니다." 오늘도 출근 길에 call taxi를 타고 가면서 이게 과연 잘하는 일인지? 나를 끝까지 지키지도 않고 그렇게 가버린 사람!! 그 심경을 내가 이렇게 헤아려야 되는건지? "참으로 내가 바보같이 살았구나 " 하며 내다 본 차창 밖에는 황사가 뽀얗게 밀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