君子蘭
2006年 4月 7日 金曜日 / 淸
오늘 아침 군자란이 그 우아한 자태로 꽃망울을 터트려서 나를 기쁘게 해 주었다.그렇게 사랑해 주던 주인을 잃은 군자란이지만 어김없이 매년 제철을 맞아 그 임무를 다함이 어찌 대견스럽지 않겠는가?
원래 우리 내외는 화초를 보기는 좋아 해도기르는 재주는 아예 없어서 민망하기 그지 없었다. 남편이 학교에서 중요한 보직으로 옮길 때 마다 축하의 東洋 蘭盆을 받아도 매번 낭패를 보았다. 물을 너무 자주 주어서 썩히지 않으면 오히려 말려 죽이기 까지 했다.
그 런데 이 군자란은 남아프리카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임에도 불구하고 잘 돌봄을 받지도 못하는 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自花受粉을 해서 매년 어김없이 그 귀중한 꽃을 우리에게 선물 했으니 그 대견 스러움에 흙도 북돋우어 주면서 작은 농부의 기분을 만끽하기도 했다.
큰 아들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 곁을 떠나 그 메마른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자 우리는 작은 집을 하나 마련하고 제일 먼저 '군자란'을 분갈이로 살림을 내서 자동차 맨 앞자리에 모시고 상경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앞세우고 새집에 들면서 "매일 이 군자란을 돌보는 것으로 故鄕을 생각해라" 라고 마치 큰 교훈을 하듯 준엄하게 당부 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잘 자라는 군자란이긴 해도 이 아이들의 무성의에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매학기 방학 때만 되면 아이들은 죄스러운 듯이 목소리를 죽여서 "저~ 군자란이 죽었어요" 이렇게 몇 년을 계속 번갈아 바꾸어 주어도 당할 수 없게 되자 우리 내외도 지쳐서 더 이상 아이들에게 蘭盆을 살림 내주지 않았다.
이제 아이들은 모두 한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일본으로 미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유학길에 올라 그 군자란을 잠시 잊고 있겠지만 언젠가 나이를 더 먹고 고향을 떠올리고 부모를 생각하면서 그 군자란을 추억하고 찾을 그 날을 기다리며 나는 올해도 또 분갈이로 새 살림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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