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年 대학원 1년 차

구즈시지 (崩し字)
오늘 책장에서 日本 古書를 꺼내서 다시 읽어보면서 처음 대학원에 진학해서 많은 고생을 했던 일들을 다시 떠 올려 본다.古書는 일본어를 몰라도 한자에서 그 의미를 얼핏 유추해 볼 수 있다.너무 휘갈겨 써서 말 그대로 무너진 글씨다. 대학원 입학식 다음 날 부터 이걸 읽는 스터디가 시작되었었다.'일본의 고문서 원본을 대면했을 때 그 자리에서 읽을 수 있게 하라.'지도교수 가네와까 교수의 압박이 살갖에 소름을 돋게 했다나는 원래 국문학을 전공하려고 했는데 대학 입시 공부할때 우리 국어 고문법이 너무 지겨워서 일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대학에 진학했는데 늑대를 피하다 범을 만난 셈이다. 일본은 건국 이래 한번도 전화戰禍를 겪은 일이 없어서 고대 자료들이 너무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 정돈되어 있어서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는 있지만 거기따라서 그만큼 섬세하고 정확해야하기 때문에 공부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 방대한 자료들이 엄청난 부담으로 닥아왔다. 선배의 지도아래 우리 대학원 1년차들은 주 3회 모여서 죽도록 공부를 하기로 했었다.처음 첫 시간에 쉬운걸 골랐다는 것이 바로 위에 제시한 저 책이였다.하긴 그래도 초급은 그나마 글자의 형상을 갖추긴 한것 같았다.레벨이 올라가면 그냥 선만 죽죽 그어진 것들도 태반이였었다선배들께 어떻게 공부하면 되냐고 물었더니'공부에 무슨 왕도가 있겠느냐'며 그냥 죽도록 읽고 외우라고 했다.그러다 보면 눈에 익는다고.......얼마쯤 눈에 익어야 읽을 수 있게 되느냐고 했드니2년 정도 매일 보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고 위로를 해 주었다그것 참...... 그래도 선배들이 줄줄 읽어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서 우리도 하면 되리라고 힘을 냈던 기억들이 아직도 너무 생생하다이 古書의 뜻을 잘 터득하는 정도를 넘어서 학생들 앞에서 거침없이 매끄럽게 잘 읽어내야 했으니 그 고생이 무릇 기하였던가!筆舌로 다하기 어려웠든 그 고충이 지금 이 나이까지 가슴을 저며 온다 그렇지만 대학원에서 학위가 끝날 때 까지 그 여러해 동안 거의 매일 古書를 놓지 않고 읽었던 그 힘이 결국 오늘을 사는 원동력이였다는 감사함으로 책장을 즐겁게 넘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