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otebook

밤나무들의 꿈

김인숙로사 2016. 1. 24. 19:38

 




밤나무들의 꿈


 

  국가 시책이란 한치 앞을 모르게 믿을 게 못된다.

70년대 초 박 정권은 구호에 그치고 말았던 시책 중에 

경쟁력을 내세워 밤나무 심기를 권장했던 일이 있다.

마침 우리 집도 남편이 서울 직장을 고향으로 옮기면서

서울 집을 팔아서 마련한 몇 만평의 산이 있었다.

국가 시책에 귀가 솔깃한 우리는 딸아이가 태어나는 날 

시어머니와 남편이 많은 인부를 거느리고 천오백주의 밤나무를 심었다.

 

  위로 아들을 둘 낳고 여의대로 염원인 막내로 딸을 낳았고 바로 그날

밤나무까지 심었으니 필경 행운일 것으로 믿고 우리는 기뻐했다. 

그러나 욕심이 앞서 밤나무를 심기는 했으나 농사일을 전혀 모르는

우리 가족에게는 그 밤 농장을 돌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남의 힘을 빌리는 일이 힘에 겨웠다.

 

그러던 몇 해 후에 시어머니마저 타계하셨다.

그러니 자연 밤 농장은 우리부부에게 버림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밤나무는 30 여년을 두고 자색 윤기가  돋보이는 알밤을 내려서

보답을 해 주었다. 돌봄을 받지 못해도 밤을 수확할 수 있는 기쁨이

주어졌지만 우리는 그 밤을 줍는 일도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힘이 들어서 제대로 수확을 할 수가  없었다.

밤송이는 탐스러워서 보기는 좋지만 따가운 가시가 접근을 용이하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밤 농장은 이제 주인 없는 산밤으로 전락해서

가을이면 강릉시민 누구나 찾아가서 즐겁게 밤을 주을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딸아이의 생일이면 우리 내외는 이렇게 축하를 했다. 

 

  "네가 태어 나 던 날엔 일천 오백그루의 밤나무를 심었었다.

밤나무는 매년 자색 윤기가 돋보이는 알밤을 내려

만생萬生을 즐겁게 해 주었더니라."

 

  이렇듯 애지중지하던 딸 '유리'가 어느덧 스물여덞 나이가 되어서

전생의 인연 같은 신랑감을 맞아 결혼을 했다.

그런데 그 사위감은 사돈 되시는 분이 밤을 줍는 태몽을 꾸시고 낳은

아들이라고 하셨다. 그 꿈과 같이 사돈님께서는 밤 줍기가 가을의 행복인 분이셨다. 

그래서 사돈님께 밤 농장 이야기를 드렸더니 농장을 견학하시고 즐겁게 관심을 가지셨다.

그 후 사돈님께서는 매년 가을 친구 분들과 함께 밤 추수로 아주 행복한 가을을 맞으셨다.

이제 주인을 제대로 만나서 밤나무들은 30년만에 꿈을 이룬 것이다.


우리 조상님들께서도 사돈님 덕에 우리 농장 밤으로 빚은 추석 송편을

응감하시게 되셨으니 우리 딸 내외는 천상의 인연인가보다.

무엇보다도 사위가 태몽이 밤인 것처럼 젊은이답지 않게  밤 가위까지

주문해서  밤 까기를 즐기니 진정 율동栗童임엔 틀림없다.

사위의 전화기에는 딸아이 이름 '유리'가 율로 저장되어

사랑을 받고 있으니 역시 밤과는 뗄 수 없는 밤톨이 부부임엔 틀림없다. 


  <2009年9月2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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