評論 世上

季刊 『시사사』 2021년 겨울號 揭載. 작품상 수상대담(“푸른 자전거의 푸른 바퀴”는 어디로 굴러가는가)

김인숙로사 2021. 11. 18. 14:17

季刊 시사사2021년 작품상 수상대담

 

김인숙_“푸른 자전거의 푸른 바퀴는 어디로 굴러가는가

 

대담 : 김인숙(시인) / 권경아(문학평론가)

 

 

권경아 : 선생님, 안녕하세요? 먼저 <시사사 작품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등단 이후 8년 만에 첫 시집 먼 훗날까지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2020)를 출간하셨습니다. 첫 시집 출간 이후 한국문학비평가협회상, 서초문학상 등을 수상하셨고, 이번 수상까지 기쁜 소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쁜 일정을 보내고 계시리라 생각되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김인숙 :

첫 시집을 낼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자 큰 기쁨이었는데 그 미숙한 책에 상까지 주시니 감사한 마음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죠. 그런데 소포머 징크스라고 그러나요? 이제부터 더 나은 시를 써서 또 한권의 시집을 내보겠다는 욕심이 나기 시작하니까 이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요즘은 마음을 비우는 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예전같으면 일상의 경험을 시와 연결시켜보겠다는 생각을 했을텐데 요즘은 일부러라도 그런 생각은 지우고 있어요. 대신 이제까지 해보지 않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넷플릭스에서 좀비물을 일부러 찾아본다던가 그런 거요. 공포영화 같은 거 딱 질색이었는데 말입니다.

 

권경아 : 개인적으로 시집의 첫 장을 장식하는 거울과의 동행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여기에서 당신은 모두 의 또 다른 모습이며, 무수한 자아의 변주와도 같다고 보았습니다. 이 자아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며 새로운 무수한 자아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자아는 푸른 자전거의 푸른 바퀴가 되어 멈추지 않고 굴러갑니다. 그리고 의 무수한 변주를 나는 기록해야 한다라는 부분에서는 지치지 않는 자아 탐구의 열정이 느껴지는데요. 선생님의 시세계가 추구하는 시적 지향을 질주하는 푸른 자전거의 푸른 바퀴라 불러도 되는지요?

 

김인숙 :

정말 중요한 것을 짚어 주셨는데요. 바퀴라는 건 둥근 물건이기 때문에 무한 반복의 속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전거의 바퀴는 네발 달린 자동차와 달라서 내 스스로가 페달 젓기를 그만두면 그냥 멈추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쓰러져 버리고 말지요.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일이라는게 자전거 바퀴와 같다는 생각을 언제나 하고 있어요. 가까이서 보면 바퀴는 늘상 같은 자리를 돌고 있죠. 또 그걸 내 발로 돌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하고요. 그렇지만 내가 페달을 저은 만큼 또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 속도가 빠르지도 만족스럽지도 않지만 분명히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지요. 자아탐구라는 작업 역시 그런 일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권경아 : 이런 의미에서 이번 수상작품 중에서 이정표를 회상하다가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멀어져간 이정표를 회상하며 아지랑이가 살짝 묻어있는 이정표엔/우리들의 이름이 저마다의 방식으로/신발을 벗어 놓고 갔네라고 표현하고 계신데요. 시의 끝부분을 보면 절대로 변하지 않을 이정표의 이름만 부르고 있습니다. 이 시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그 동안 선생님의 시에서 드러나는 자아에 대한 천착이라는 시세계가 웅숭깊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에는 자아에 대한 인식이 잔잔하지만 강하게 상징화되어 그려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발표작 나는, 나만 아는 나일까(현대시학20215-6월호), 나는 누구인가(문학춘추2020년 겨울호)에서 이러한 에 대한 인식이 잘 그려지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자아 탐구 혹은 자아 찾기의 시세계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 생각해도 될까요?

 

김인숙 :

자아를 찾는 작업은 멈출 수도 없고 멈춰서도 안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게 결국 나로부터 시작되는 거잖아요. 내 스스로가 나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으며 그걸 통해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를 안다는 건 가장 원초적인 문제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해요. 흔히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능력 중에 하나가 자기객관화라고 말하는데 사실, 자기객관화처럼 어려운 일도 없거든요. 그래서 내가 누구냐, 나는 어떤 사람이냐라는 질문은 이 나이가 되어서도 멈출 수가 없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주제는 앞으로 쓸 시에서도 계속 반복하게 될 것 같습니다.

 

권경아 : 선생님은 시작 활동 외에도 평론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2017년 평론으로 등단(시와세계)하신 이후 시인동네<하이쿠(俳句) 제대로 읽기>라는 연재를 1년 동안(20184월호~20193월호) 이어오셨습니다. 일어일문학 전공으로 대학에서 오랫동안 강의도 하셨는데 간략하게 하이쿠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김인숙 :

하이쿠는 시라는 문학 형식이 가진 속성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려고 애를 쓰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겨우 17음이라는 극도로 한정된 길이 속에 5, 7, 5음의 운율과 계절어와 매듭어까지 반드시 넣어야 하는 엄격한 형식이 있고, 이 엄격함을 따르면서도 자유로운 표현을 보여주어야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거든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현대시와는 다소 결이 맞지 않는 옛날 장르일수도 있지만 언어의 리듬과 정제된 의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습작을 하시는 분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거라 생각해요.

 

권경아 : <하이쿠(俳句) 제대로 읽기> 연재에 이어 <김인숙의 가부키(歌舞伎)>라는 연재를 통해 일본의 전통무대공연극을 소개하고 계십니다. 시인동네가 종간되기 전까지 20194월호부터 7월호까지 4회 연재로 막을 내려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가부키에 대한 간략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김인숙 :

서양에 오페라가 있다면 일본에는 가부키가 있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죠. 배우들의 춤과 노래 연기에 기계장치까지 동원된 무대 연출이 더해진 종합예술이거든요. 그곳에서 선보였던 의상이 세간에서 유행이 되기도 하고, 무대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당시 일본 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언뜻 보기에는 다소 과장된 듯한 연기와 무대 연출이 지금의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연출기법으로 차용될 정도로 가부키가 지금의 일본 문화에 끼친 영향이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일본 역사나 문화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꼭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권경아 : 일본문학 전공자로 한국시를 창작하고 계십니다. 일본문학에 대한 지식이 선생님의 시창작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까요?

 

김인숙 :

형식 자체는 다르니까 하이쿠를 공부했다는 게 제가 쓰는 시의 외피를 만드는데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하이쿠들이 자연 속에 나, 세상 속의 나같은 내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성찰하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그런 점들이 제 시세계에 영향을 주기는 했을 겁니다. 비단 하이쿠 뿐만이 아니라 사소설처럼 일본 문학에는 내적 성찰을 다루는 장르가 많죠. 일본문학을 전공해서 제가 내적성찰에 천착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내적성찰에 관심이 많아서 일본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권경아 : 선생님은 학위논문으로 마쓰오 바쇼의 기행문인 노자라시 기행에 대해 쓰셨고, 마쇼의 하이쿠에 대한 논문도 발표하신 것으로 압니다. 바쇼는 에도시대의 유명한 하이쿠 작가이기도 하지만 또한 유명한 여행가이기도 했습니다. 시인에게 여행이란 시적 인식의 확장을 가져오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현실적으로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평소 여행은 많이 하시는지요? 선생님의 작품을 보면 여행 외에도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어린 시선이 보입니다. 시작 활동 외에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취미 혹은 관심사 등은 무엇인지요?

 

김인숙 :

 

여행 좋아하지요. 거창하게 해외나 먼곳까지 가지 않더라도 일상을 벗어난 공간을 느껴본다는 건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참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코로나때문에 어디 한군데 발걸음 옮기기가 쉬운 곳이 없는데 그럴 때는 가까운 곳에 있는 박물관을 즐겨 찾습니다. 그곳에 진열된 유물들을 보면서 그 옛날 사람들이 이걸 왜 만들었을까? 어디다 썼을까를 배우고, 제 나름대로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거든요. 그런게 좋아서 대학에서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수업을 일부러 찾아듣기도 했으니 이게 취미라면 취미겠네요.

 

권경아 :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간략히 말씀해주세요.

 

김인숙 :

시인이라는 명칭을 이름 앞에 달고 살아가는 이상, 시를 쓰는 일이 앞으로도 제가 해야할 일이지만 첫 시집을 내면서 이제까지 속으로 쌓아두었던 경험과 감정을 다 써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이 요즘들어 자주 들더라구요. 그래서 당분간은 소진해 버린 감정과 경험치를 다시 쌓는 작업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좋게 말하자면 시 재료를 얻기 위한 공부를 더 하려고 해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닥치는 대로 보고 듣고 흡수하는 거지요. 가능하다면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로 채워보려고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시로서 불쑥 찾아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