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廣場

季刊 『문학춘추』 2020年 겨울호 (나는 누구인가 外 1편 ).

김인숙로사 2021. 3. 6. 14:17

나는 누구인가 1

 

김인숙

 

 

 

고향에 우물이 있었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동그랗게 지켜주던 그 우물,

언제부터인가

찡그린 얼굴로 달걀 썩는 냄새가 났다

우물에 떠 있던 내 얼굴도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코를 막고

고향을 버렸다

 

우물이 보이지 않는 쪽

멀리 더 멀리

나를 잃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캄캄한 어둠의 중심에 나, 서있다

 

내 삶의 어느 구석에도

신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가 떠나시던 그 겨울

빌딩 옥상에 내려앉은 달빛과

얼음 깨지는 소리

 

나는 민둥산 등성이에 우물을 파고 있다

파기도 전에 말라버린 우물을 파고 있다

 

 

 

동판 영화 포스터

 

 

 

지하철 성신여대역엔 동판 영화 166개가

까맣게 찌든 채 시간을 건너고 있다

5번 출구엔 '길소뜸' '마부' '쉬리'가 발끝에 차이고

6번 출구엔 '벤허' '세븐사무라이' '아빠는 출장 중'이다

 

낡은 초가 문틈으로 길을 찾는 '나운규'선생,

아리랑 슈퍼에서 아리랑 국수 맛을 챙기고 있다

 

아직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공동경비구역' 권총 사이의 남과 북

E. T'가 사람들과 손가락을 맞대고 킬킬거린다

서핑을 위한 광기의 전쟁 '지옥의 묵시록'

 

아직 영화가 끝난 것은 아니다

52개의 동판을 꼭꼭 밟았고

79개의 동판 요철이 내 발끝에 차였고

35개의 영화 제목을 자세히 읽었고

마지막 동판에 멈춰섰다

영화 '아리랑'의 광인 영진이 든 낫,

내 발목을 찍었다

 

많은 시간들이 노을 너머로 숨어버렸지만

아직 그들과 나 사이에

숱한 이야기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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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月刊 現代詩學등단

* 2017季刊 시와세계評論 등단

* 2013년 제6한국현대시협작품상 수상

* 2015년 제7회 열린시학상 수상

* 2020년 제5회 『한국문학비평학회학술상 수상

* 2020년 제18회 서초문학상 수상

* 2020년 제22문학비평협회상 수상

* 2020년 제18회 서초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