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였소
김인숙
게으름쟁이 오수(午睡)가
백지로 날아들었소
한낮은 롤 스크린처럼 말려들어
뿌리는 이미 땅속 깊이 묻어버렸어도
오수는 저렇게 몰려오고 있소,
햇살을 죽이려고 조금씩
구름이 음각과 양각을 다투는 창가에서
일찍 눈 떴던 새벽들이 눈꺼풀을 체납했소
고양이가 걸어 들어갔소
차양(遮陽)이 제 끝보다 길어졌소
계절 고르는 일을 깜빡하여
밀가루 반죽처럼 말라붙은 웃음들도
짙어지고 두터워졌소
새긴 손톱의 눈금에
오수는 길게 수로를 내었소
넘치는 발자국에 힘을 새겨 넣었소
신발을 신은 옅은 잠이 성큼, 편서풍에 뛰어올랐소
오후 2시의 그늘에 잠깐 오수가 깃들었소
구부러진 부리와 빠진 발톱에도 스며들었소
아무도 모르게 내 눈 속을 머물다 떠났소
짧은 햇살이 만지고 간 오수의
새하얀 한낮이 있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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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月刊 『現代詩學』 詩 등단
* 2017년 季刊 『시와세계』 評論 등단
* 2013년 제 6회 『한국현대시협』 작품상 수상
* 2015년 제 7회 열린시학상 수상
* 2020년 제 5회 『한국문학비평학회』 학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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