評論 世上

月刊 『시인동네』 2018年 9月號 揭載(하이쿠(俳句)는 여름의 끝자락이다)(連載 제6회).

김인숙로사 2018. 8. 27. 14:02

하이쿠(俳句) 바로 읽기 (連載)

 

하이쿠(俳句)는 여름의 끝자락이다(連載 6)

  

김인숙

  

 

 

  詩句 안에 계절어가 들어가야 하는 하이쿠는 어느 계절을 가장 많이 노래하고 있을까? 자연을 노래한 계절어의 숫자만 놓고 말하자면 가을이라고 한다. 유명한 옛날 일본 전통 시 100수를 모아 놓은 햐쿠닌잇슈 (百人一首) 에서도 가장 많이 노래하는 계절 역시 가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해보면 십중팔구 여름이라고 대답한다. 왜일까?

일본인 知人 중 하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수많은 일본 학교들이 하이쿠 써오기를 여름방학 숙제로 내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머릿속에 하이쿠 하면 여름이라는 이미지가 생겼을 것이라고.

  

            물놀이 하던 아이 앞에 배달된 선생님 편지

            水遊びする先生から手紙 (다나카 히로아키/田中 裕昭)

   

름방학과 하이쿠 숙제. 물놀이 하던 아이가 받은 선생님의 편지는 여름방학 잘 지내고 있냐는 안부였겠지만 편지를 받아든 아이는 대뜸 방학숙제부터 걱정하게 될 것이다. 하이쿠 숙제는 우리들이 기억하고 있는 여름방학과 그림일기와도 같은 것일까? 타당하게 들리긴 하는데 선뜻 받아들이고는 싶지 않은 진단이다. 학교 교육 때문에 강제된 기억이란 건 너무나도 낭만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이 아닐지라도 하이쿠와 여름의 관계란 일본인들이 여름이라는 계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증 때문이 아닐까라고 멋대로 한번 생각해 본다. 대중 하이쿠를 뜻하는 이름인 센류 (川柳)만 해도 그렇다. 뜻을 풀어보면 강가의 버들. 이보다 더 여름스러운 이름이 또 있을까?

 

             자두를 산다 마치 난파선처럼 고요한 하루

             (すもも破船のようにかな)

  

미야자키 토시(宮崎 とし)2015년 발표한 이 하이쿠를 읽을 때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하얗게 작열하던 쿄토(京都)의 뜨거운 태양을 떠올리곤 한다. 우리들은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덥고 습한 쿄토의 여름. 자는 기요미즈테라(淸水寺)를 들렀다가 내려오는 언덕길에서 더위를 먹어 쓰러진 적이 있다. 그 이후로 필자는 여름엔 쿄토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110년 만에 찾아온 폭염 때문에 올해는 우리나라에서도 더위의 신기원을 경험하긴 했지만 일본의 여름은 거의 매년 이 지경이다

 

             여름 개울을 건너는 기쁨이여 손에는 짚신

             夏河すうれしさよ草履 (요사 부손/與謝 蕪村)

  

유명한 고전 하이쿠들은 무더운 일상 속에서도 한줌이나마 청량함을 찾으려고 하는 노래들이 많았다. 그 옛날의 여름은 그게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 덕분일까? 밤낮의 구분 없는 열대의 여름을 맞는 요즘 작가들에겐 그런 여유가 없다.

 

             석간신문은 가장 더운 시간에 배달된다네

             夕刊まるころに(하세가와 카이/長谷川 海)

 

개인적으로는 참 멋없는 라고 생각하는 하이쿠다. 어찌 이리도 무미건조하며 다운 맛은 단 한군데도 없을까? 하지만 짜증나고 무기력한 한여름의 무더위를 노래하는 시를 찾으라면 이보다 더 일본의 무더운 오후 무렵을 제대로 노래한 하이쿠도 없다. 길게 늘어진 햇볕. 더할 나위 없이 뜨거운 기온. 그때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석간신문

 

             분수 적시고 어느새 자리 떠난 여름 여우비

             噴水らしてりし日照雨 (데구치 요시코/出口 淑子)

  

그기를 내리 퍼붓다 그치고 나면 습기만 올라오는 더위를 식히기엔 턱없이 모자란 여우비. 비가 내려도 시원해지기는커녕 이내 습한 공기로 되돌아오는 일본의 여름. 그 무더운 일상 속에서도 한줌이나마 청량함을 찾아나서는 사람들.

   

             어스름 더운 밤 관중들 틈에 섞여 기다린 불꽃놀이

             暗大群衆花火待(사이토 산키/西東 三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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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연구차 머물렀었던 오사카(大阪)엔 요도가와(淀川)라는 제법 큰 강이 도시의 위쪽을 가로지르고 있는데 그곳에서 8월 첫째 토요일이 되면 매년 요도가와 하나비(花火)대회라는 성대한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만여 발의 폭죽이 하늘로 쏘아 올려지고 이 장관을 보기 위해 매년 50만명의 사람들이 강변의 고수부지를 메운다.

 

             강위에는 불꽃놀이 서먹한 달밤이련가

             川上花火にうとき月夜哉 (마사오카 시키/正岡 子規 )

 

이런 기회가 아니면 오사카의 여름을 장식하는 이 풍물를 언제 또 직접 보랴 싶어서 지인들과 얇은 여름용 기모노(着物)인 유카타(浴衣)를 입고 손에는 둥그런 부채를 들고 강변 아래에 들어선 난장 구경을 다녔다. 여전히 더운 날씨. 하지만 조금은 서늘한 기운을 품은 강바람. 그 바람이 불때마다 흔들리는 풍경소리. 얇은 창호지로 만든 뜰채로 금붕어를 떠 올리는 전통 놀이인 긴교스쿠이(金魚すくい).

  

            야시장에서 금붕어 떠낼 때의 반짝임이란

            夜店金業すくはるるときのかがやき (타네다 산토카/種田 山頭火)

  

수많은 일본의 불꽃놀이 축제가 8월에 펼쳐진다. 생각해 보면 8월이란 여름이 가장 깊은 계절이면서 그 끝이 보이기도 하는 절기. 모든 계절엔 시작과 끝이 있기 마련. 그 시작이 가장 반가운 계절이 봄이라면 그 끝이 가장 아쉬운 계절은 아마 여름일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난생 처음으로 태풍을 기다리고 응원하기도 했던 올해의 불지옥. 모두들 이 여름이 끝나길 기다려왔겠지만 어느새 8월말이 찾아오고 햇볕의 숨이 죽으며 어디선가 가을 냄새가 불어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생각하게 된다. ... 드디어 하나의 계절이 끝나가는구나.

   

            저 뭉게구름 솟는 곳 그곳에도 어느새 밤꽃

           雲くところにも家栗(이바라키 가즈오/茨城 和夫)

  

  지나가는 봄이 아쉽지 않은 것은 아마도 봄보다 더 따뜻한 여름이 찾아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봄과 여름은 단절된 별개의 계절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름의 끝에 찾아오는 계절은 모든 것이 식어 내려가는 가을. 살아가기에는 여름보다 훨씬 산뜻한 계절이지만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여름의 끝에서 뜨거웠던 기억이 식어가는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여름 날씨가 우리나라보다 한 움큼은 더 더운 일본은 더 그렇다. 더 뜨거웠던 만큼 잔상도 오래 남고 그만큼 더 아쉬움도 짙을 수밖에 없다.

   

            불꽃놀이 끝나고 미인은 술에 몸을 던진다 

            花火尽きて美人身投げけむ (다카이 키도/高井 城戸)

  

밤하늘에 한순간 환하게 터지다가 이내 사그라드는 불꽃놀이. 가장 화려한 순간과 그 이후의 어둠이 공존하는 순간. 이제는 끝이 난 축제를 빠져나와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 그래서 불꽃놀이는 여름의 끝을 알리는 풍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이쿠는 여름의 끝자락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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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 * 2012月刊 現代詩學등단

            * 2017季刊 시와세계評論등단

            * 6한국현대시협작품상 수상

            * 7회 열린시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