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속으로
김인숙
내가 너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때
너의 시선은 바닥을 친다
걷잡을 수 없는 시간이 몰려오고 있다
너무 많은 눈이 있어
너는 나를 보지 못한다
너와 나의 거리가 10년만큼이나 멀다
관계란 그런 것
그림자 위의 그림자가
그림자 밑의 그림자를 보지 못하는 것
커피 잔과 잔 사이에 머물었던 여운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
문 밖에 존재하는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잡을 수 없다,
그것을 알기까지
나는 얼마나 더 너의 뒷모습을 기억해야 할까
햇빛 속으로
두 마리의 비둘기가 한데 묶여 날아간다
비둘기에겐 없는 이별이
사람들 사이엔 있다
내 그림자가 너무 길다
거울과의 동행
내가 당신과 눈을 맞추고 걸어갈 때
천둥은 치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
너무 많은 눈을 가진 당신은
동행이라는 그 아름다운 말을 아는가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저 구름과 새의 비행을
어제의 달콤한 속삭임이었다고 이야기하면
당신은 무엇으로 나를 설득시킬 것인가
너무 많은 비상구를 가진 당신과 당신 사이에서
나는 또 무엇으로 나를 설득시킬 것인가
당신의 눈을 가리는 태양의 무늬를
이제 허상이라 이야기하겠다
내가 당신과 눈을 맞추고 걸어갈 때
천둥은 치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
이것마저 허상이라 이야기하기 전에
푸른 자전거의 푸른 바퀴가 어디로 굴러가는지
너무 많은 눈을 가진 당신이
기록해야 한다 먼 훗날까지 지켜봐야 한다
누군가 당신을 불러주기 전까지
누군가 당신을 닫아주기 전까지
일방적 출구
순서를 기다리는 진찰실 앞에서
사랑은 시작되었다
자동판매기,
오렌지 사이다 커피 코코아
몇 번이나 눌러도 되돌아오는 건 동전뿐
동전 같은 불안뿐
입천장이 목피질木皮質로 느껴질 때
눈은 천사를 원한다
본성을 자극하는 에탄올 냄새
복도를 긴장시키는 하얀 하이힐 소리
고개를 쳐드는 자낙스*의 유혹
고개를 젓는다,
천사는 어디에도 없다
너무 얇은, 유리창 속으로 투신하는 햇살
햇살의 비행이 아름답다
고개를 젓는다
밀납 인형 같은 간호사들
쓸쓸한 손톱들
*공황장애 환자들에게 처방되는 항불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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