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廣場

季刊 『詩와世界』 2015年 여름號 揭載 (모래시계)

김인숙로사 2016. 1. 23. 00:02

모래시계

   

김인숙

 

 

 

모래시계에서 태어난 시간에는

사구의 지층과

거짓말을 뚝 자르고 도망치는 도마뱀 꼬리의 무덤이 있다

  

편식으로 학교 지각이 늘어나자

아버지의 말없는 훈계들이 모래시계를 불러왔다

딸을 위해 아버지가 사 오신 5분의 시간

한번 뒤집힌 속에서 다시 5분이 태어나고 재촉이 시작된다

  

여기가 사막이었던가, 지금은 뒤집힌

성난 시간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모래는 나의 멀고 먼 미래

흘러내리는 모래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펼쳐놓아야 했던 신기루가 시간을 잡고 있다

아버지는 차고 넘치는 시간의 地主가 되고

사막의 모래알이 때마다 입안에서 다시 버석거린다

식탁의 사막만 봐도 무서워진다, 곧 가혹한 재촉이 시작될 것이다

   

가장 느린 시간이 걷고 있는 모래 속에서

다시 시작되는, 말없는 아버지의 훈계들

잠을 깨어 살아나는 시간의 독재

 

내 혼수품목에 들어있던 아버지의 모래시계,

아무렇지도 않게 모두의 속을 뒤집으며

나를 닮은 딸아이를 천천히 끌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