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季刊『시와소금』2014年 겨울號 揭載. (시인의 칼).

김인숙로사 2016. 1. 22. 15:51

시인의 칼

 

김인숙

 

   

 

  말이란 스쳐지나가는 것이다. 공중으로 흩어지기도 하고, 기억 속에 묻혀 지기도 하며,

때로는 무시되어 사라지기도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말들이 자신 만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인식하고 기억하는 말의 숫자란 세상의 모든 말들의 일 억분의

일조차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이란 재미있는 직업이다. 스러져가는 모든

말들의 의미를 뒤적일 권리를 가졌으니까.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따분한 직업이든지, 기억할

필요조차 없는 말들의 뒤꽁무니를 쫓아 다녀야하는 숙명을 지녔으니까.

   책상머리에 앉아 세상을 떠도는 말들을 재단할 때마다 떠오르는 옛 이야기가 있다.

평생 단 한 자루의 칼로 소를 잡았다는 유명한 백정이야기, 그 칼 솜씨가 어찌나

능수능란하던지 살점이 베어져 나가는 소 자신조차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지요 아마, 게다가 그가 쓰는 칼은 한 번도 갈지 않았는데도 날 하나 나가지 않았다고

 하니. 그래서 사람들이 그에게 비결을 물었다네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그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지요. 살과 뼈의 틈사이로, 뼈와 뼈의 틈사이로 칼날을 넣어서 움직이면 칼날을

 다치게 하지 않고  소를 잡을 수 있다고. 그것이 평생 칼 한 자루를 쓰는 비결이라고.

  

   알고 보면 식상한 이야기, 따지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나는언제나 그 우화를

생각한다. 내 책상 위에 뭉텅이로 모여 있는 말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풀어야할지 난감하기

만한 말들의 실타래를 볼 때마다 말꼬리를 신묘하게 베어 낼 그 백정의 칼 한 자루가 부러워

지곤 한다.

   칼날의 이라는 이는 다 빠져 무디기 만한 나의 칼. 나는 말들을 재단하기 위해 도대체 몇

자루의 칼을 버린 것일까? 그리고 앞으로도 몇 자루를 더 버려야 나만의 칼 한 자루를 손에

쥐게 되는 것일까?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하는 것일까? 가끔은, 아주 가끔은 그런 회의가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시지프스가 그러하듯이, 굴러 내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한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그의 운명이 그러하듯이 난 오늘도 책상위에 앉아 무디어진 칼을 간다.

얼마 안가 이가 빠질 것을 알면서도, 생각처럼 예리하게 베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엉클어진 말 타래 위로 나의 칼을 들이민다.

그것이 시인의 운명이니까. 평생 말꼬리를 쫓아다녀야 하는 시인의 숙명이니까.


 

季刊『 시와소금 』2014年 겨울號 揭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