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廣場

季刊 『시와세계』 2019年 겨울號 揭載 (Black out / 홀씨)

김인숙로사 2020. 4. 19. 19:52

Black out


김인숙

 

 

 

어둠이 좋았다

내가 없는 나를 다녀오는

그런 날이 좋았다

 

내가 모르는 나를 사람들은 증언한다

세세한 목격담으로

비난한다

 

으깨지고 기어오르고

넘치다 굽어지는 타인은

무한 반성을 보유한 부자다

속담속에는

못생긴 술이 항아리속에서 끓어넘친다

잘못한 술의 손목을 잡고

사람이 찾아가거나 찾아와

백배사죄한다

 

사람은 본래의 모습과

술 속에 눌러 둔 또 몇 명의 모습과

비틀어진 얼굴과

짙푸른 염색의 이목구비로

한 사람은 구비되어 있다

 

반성과 자학이 주고받는

거리와 계단과 노래들속의 추측

끊어져버린 길 없는 시간들,

내가 시간 밖으로 밀려나는

 

Black out

 

 

홀씨

 

 

홀씨들에게 바람은 수족手足이다

그 바람의 겹겹에 싹트는 날씨가

점점 묵직해질 때

반상회에서 오르내린 입방아들엔

탱탱하게 물이 올라있듯

마지막 날, 그 하루를 넘겼을 뿐인데

과징금이 붙는 세상의 고지서들

 

불만이 겹겹이 쌓인 마음에는

어떤 홀씨도 내려앉지 않는다

내린 다음에 타라는 친절한 안내방송은

너무 느린 행동지침이다

그건 썰물과 밀물사이 달이 자라는 시간

안착한 홀씨가 노란 꽃의 가옥을 세우는 시간

산기슭은 뒤져 다람쥐의 허기를 주워

가을 내 볕이 끓는 가마솥에 쑨

도토리묵 한 그릇이 굳어가는 그 시간은

또 누구의 것들인가

 

홀씨들이 기껏, 화를 낸 일이란

틈과 틈 사이 꽃피운 일일 뿐인 그런

화합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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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숙

* 2012月刊 現代詩學등단

* 2017季刊 시와세계評論 등단 

* 2013년 제 6한국현대시협작품상 수상 

* 2015년 제 7회 열린시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