評論 世上

季刊 『시산맥』 2015年 봄號 揭載 고영시집(딸국질의 사이학-나는 불 꺼진 숲을 희망이라 말하고 싶다 ) 詩評

김인숙로사 2016. 1. 22. 15:19

 

 

고영시집『딸국질의 사이학』


나는 불 꺼진 숲을 희망이라 말하고 싶다 _ 고영



 

추분 지나 급격하게 야위는 가을밤,

실내등 불빛 아래서 『랭보―지옥으로부터의 자유』를 읽다가

랭보의 무덤에 이르러 나는 밑줄을 긋는다

밑줄 아래로 펼쳐진 회화나무 숲에서

자유롭게 비행하는 산비둘기가 보였다

잉크로 쓴 내 첫사랑은 유성이 되었다

검정파랑빨강 삼색의 잉크병을 비우면 희망도 상처로 번졌다

책을 떠나서 가벼워진 단어들 문법들 그리고 금방이라도

뾰르릉 날아갈 것 같은 詩語들,

유혹은 놓칠 수 없는 것들만 밤새 끌고 다녔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숲은 마약처럼 위험했다

부도난 어음은 찢겨져 길거리에 뿌려졌다 지갑 속에서

낯선 명함들이 죽어 나가기도 했다 내 연락처엔

야윈 발자국들만 웅성거렸다

바람이 이끄는 길을 밟고 가기도 너무 벅찼다

세상은, 문법이 통하지 않는 미로 같았다

 

랭보의 무덤을 지나 밑줄도 끝났다

밑줄 너머로 펼쳐진 회화나무 숲에서

아름다운 유성을 품고 있는 산비둘기가 보였다

저토록 눈부신 알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산비둘기 날 때마다 숲은 환해졌던 것인가

나는 불 꺼진 숲을 이제 희망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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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된 자아는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일까?

 

김인숙(시인)


고영 시인의 詩「나는 불 꺼진 숲을 희망이라 말하고 싶다」는 숲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숲속을 헤매던 시인은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요? 하얀 백지위에 詩語를 토해내는 작자로부터

분열된 자아는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일까요? 그 자아가 맨발로 헤쳐 나가는 숲속은

몹시도 황량하다. 푸른 잎은 떨어지고 가지들은 말라있다. 하지만 시인은 쓰러지지 않는다.

마침내 어두운 숲속의 입구에서 세상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시인.

그렇게 헤매던 시인은 무엇을 찾은 것일까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찾아낸다.

그렇게 유성을 품은 산비둘기가 날 때마다 숲의 환한 빛이 모두의 어깨에도 조용히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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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 * 2012月刊 現代詩學등단

           * 6한국현대시협작품상 수상

           * 7회 열린시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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