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외 1편
김인숙
가루약이 엉겨 붙은 목젖이
뒤늦게 반응한다
남은 기억을 담보로 그녀는 아직 살아있다 오독誤讀한 시간들, 아들을
남편으로 딸을 어머니로 알고 매달리던 많은 날들이 요양원 침대에 묶여있다
벗어나지 못한 반경, 하늘을 덮고도 남을 만큼 손이 난폭해진다
목을 조여 오는 울음이 반복된다
흐린 눈빛이 갈망하는 바깥은 늘 자물쇠로 잠겨있다 물병과
쟁반, 기저귀와 휴지, 습관적으로 진열된 공간들이 흩어진다
과장된 통증은 구토가 되어 치밀어 오른다
벽에 걸린 액자가 날아들고
날 세운 웃음소리도 달려든다
복도들이 일제히 벌떡 일어선다
잃어버린 출구
가면 같은 얼굴의 간병인이 건넨
믿을 수 없는 알약, 변기통에 처넣고
버튼을 누른다
어디에도 출구는 없다
겨울을 건너다
지금은 바람에게 송곳니가 돋는 계절,
허공의 목덜미에 이빨자국이 선명하다
웅크린 하늘이 갈기를 털자
깃털처럼 조각조각 오후가 흩어졌다
분주해진 노선이
서둘러 퇴근을 싣고 질척한 하루를 쓸어간다
바람에 뜯긴 나무들도 짐승이 되어
목을 움츠리는 위험한 계절
앞니를 드러낸 바람 앞에 독거노인들은 동면중이다
불기 마른 방안에서 바스러지는 각질을 수습하며
언제 올지도 모를 내일을 기다린다
위험표시를 붙인 진눈깨비
제 영역표시를 하고 지나간다
진공포장 된 계절이
제 순서를 기다리며 어디선가 발돋움할 것이다
季刊『詩와美學』2013年 여름號 揭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