受賞

季刊 『시사사』 2021년 작품상 수상

김인숙로사 2021. 11. 18. 14:43

季刊 『시사사』   작품상 수상  시상식( 2021년11월12일 15시 / 천안 백석대학교 창조실)

 

< 수상작품 >

季刊 시사사2021년 작품상 수상작품

* 작품상 수상자 : 김 인 숙

 

* 수상 작품

<시간 밖의 당신께 4>

 

 

시간 밖의 당신께

 

그거 알아요 당신?

시간은 식물성과 광물성으로 나뉜다는 거

당신의 정원엔 온통 식물과

오지의 품종들이 가득하군요

계곡의 물소리를 이어폰인양 귀에 꼽고

찔레꽃 향기는 오월의 이마로 번지고

기다림은 찔레 순처럼 자랐지

 

당신은 시간 밖에서

바람과 머리카락 세는 놀이를 하며

강아지의 송곳니와

풀벌레 울음소리를 모아

볶고 무치고 튀겨 밥상을 차리지

정원의 아침이슬도

계절을 열고 나온 것들의

뾰족한 입술도 보지 못한

당신은 하루가 짧다고 투정하지만

그건 시간 밖에 있기 때문이지

 

바람 부는 날

정원의 꽃잎들이 서로 입술을 비비듯

거대하게 입을 벌린 시간에

기다림을 파종해요 당신

식물성의 시간엔

온갖 울음들이 붙어 있어요

 

 

허공 속 마을

 

 

허공은 기억의 평방미터로 계산되어서

시간이 지나면 한발자국도 디딜 수 없다

그 마을의 굽어진 허공을 넘나들며 오는 소리,

그늘을 피해 묵혀두었던

마을의 설화들이 구불거리며 허공을 탄다

 

나의 입속 노래는 한없이 늘어졌다

더 이상 역광을 지지 않으리라는 다짐이

입속에서 구취를 만드는 한 낮,

 

기다리는 편지의 답장은 오지 않고

내방에 기적소리를 마구 밀어 넣는 기차 때문에

주머니에 감춰두었던 비밀이 터지는 소리

 

한낮이라는

허공 속 저 마을

 

아버지는 바람을 따라가고

어머니는 한 계절을 널어 말리고

누군지 얼굴이 가물가물한 아이는

민들레에게 허공을 읽어줄 때

머릿속에서 긁어낸 찌꺼기들을 풀무질 한다

 

내가 날아올라서 기억의 평방미터를

누군가의 눈꺼풀 속에

새겨 넣을 때까지

 

 

나무의 내일

 

 

나무의 훗날이란

한 백년을 기둥으로 선채

유유한 무량수전으로 흐르거나

굽고 휘어진 천성을 따라

구불구불 연기가 되는 일이겠지만

오늘 바람의 경로로 서 있는

저 나무는 한껏 저의 반경을 시험한다

도망 끝에 잡힌 빚쟁이처럼

이리저리 흔드는 대로

온통 나를 뽑아가라는 자세다

 

그런 나무들도 먹구름이 바람 사이로 몰려올 때

불안에 흠뻑 젖은 몸으로

말릴 수 있는 햇볕을 기다리겠다 한다

 

몸집이 큰 나무일수록

내일이 불안하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상처가 많아도

한 발짝도 물러서거나

달아나지 못한다

 

 

밤을 위하여

 

 

바짝 말라 하얗게 질린 밤이 강을 이루고

짧아진 생각들이 밤을 비켜간다

헝클어진 시간들이 단단히 뿌리를 박는다

 

하늘을 미워하는 시간이 있다

그럴 즈음

노래를 부르는 내 목청에 귓바퀴를 세우는

바람처럼 밤의 표정이 사나워진다

목청이 갈라진 내가 바람을 따르듯

저 밤을 따라

어딘가에 빨려들고 싶다

지금 두 눈을 뚫고 젖은 사연들이 쏟아져도

 

생각 없이 부서질 수 있는 기둥이므로

밤은 애틋한 그리움이다

항상 부르는 노래는 밤을 위한 것이다

 

밤으로 내장을 가득 채우고 싶다

목청을 다듬어

밤을 위한 노래를 하고 싶다

 

밤이 혀끝을 길게 내밀지 않아도

나는 이미 흥건하게 젖어있다

 

 

이정표를 회상하다

 

 

멀어져간 이정표를 바라보았네

한낮 그림자가 꽃병을 엎지를까봐

거실 창문 안쪽 의자에서,

어떤 풍경도 속이지 못하는 투명을

지켜만 보았네

 

아무도 끄지 못하는 낮이 기우는 동안

창밖엔 빗줄기가 날아올랐고

바람에 흔들린 밤을 끔뻑끔뻑 떠돌며

흘기던 눈들이 사라져 갔네

아지랑이가 살짝 묻어있는 이정표엔

우리들의 이름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신발을 벗어 놓고 갔네

 

층계를 굴러 내려가는 목소리에

자꾸 귀를 세웠지만

내 귀는 끝내 난청이 되어 버렸네

절대로 변하지 않을 이정표의 이름만 부르다

그 이름들은

끓어 넘치는 카레라이스처럼 솟아오를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