評論 世上

月刊 『시인동네』 2019年5月號 (가부키(歌舞伎), 리엔(梨園)의 아내)(連載 2회).

김인숙로사 2019. 5. 21. 00:41

김인숙의 가부키(歌舞伎)


가부키(歌舞伎), 리엔(梨園)의 아내(連載 2)




  이전 글에서 가부키(歌舞伎) 배우는 가부키를 대대로 가업으로 이어오는 몇몇 집안 출신의 사람들이 하는 특수 직업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집안이라는 것이 가족들로 구성된 가문이면서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와도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일본사람들은 이 가부키 집안을 리엔(梨園)이라고 부른다. 굳이 한자를 풀어보자면 배나무 정원 쯤 되는 이 말은 원래 당나라의 궁중악사 양성소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당나라 현종이 배나무가 심어진 정원에서 음악을 가르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여간 리엔은 음악뿐만이 아니라 무대공연을 하는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 나중에 전의가 되는데 이것을 일본의 가부키 집안이 자신들의 별칭으로 받아들이면서 이젠 가부키 집안을 우아하고 멋스럽게 부르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아무래도 옛 스러운 표현인 리엔이라는 말은 보통 때는 잘 쓰이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리엔의 아내>라는 말로 쓰일 때다. 일본에서 가부키 배우는 인기 연예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결혼이 꽤나 큰 연예뉴스로 다뤄지는데 2016년 인기 가부키 배우인 카타오카 아이노스케(片岡愛之助) 와 유명 여성연예인인 후지와라 노리카(藤原紀香)가 결혼했을 때도 <후지와라 노리카, 리엔의 아내가 되다>라는 헤드라인이 뉴스를 장식했었다.

 

   그런데 <가부키배우와 결혼하다>가 아니라 왜 굳이 <리엔의 아내가 되다>라는 표현을 쓰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리엔이라는 곳이 정말로 별난 곳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일본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곳. 그곳이 바로 리엔이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리엔의 아내는 가부키 배우의 배우자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리엔의 아내가 된다는 표현 자체가 가진 뉘앙스는 이제까지 평범한 일반 세상에서 살던 여성이 리엔이라는 이상한 나라의 일원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리엔의 아내>는 있어도 <리엔의 남편>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부키 집안이 철저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세상이 맞나 싶을 정도로 현대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과거의 시점에 그대로 박제되어 있는 세상. 그곳이 바로 리엔(梨園)이다.

 

   가부키 무대에는 여자들이 여럿 등장한다. 가발을 쓰고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 요염한 몸짓을 짓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굴만큼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가부키에서 여자로 보이는 그들 모두 사실은 남자이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여성은 가부키 무대에 설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극중의 여성 배역은 온나가타(女形)라고 불리는 여성 배역 전문 남자배우들이 연기를 한다.

 

   원래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초창기의 가부키는 온나가부키(女歌舞伎) 라고 해서 여성들의 공연이었다. 400여년전 가부키를 처음 공연했다고 알려져 있는 이즈모노 오쿠니(出雲阿国: 1572-?)도 여자였고 그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여자들이 가부키의 주역으로 활동했었다. 이것이 남자들의 무대로 바뀌게 된 이유는 바로 성매매로 인한 풍기문란 때문이었다. 가부키가 인기를 끌면서 여자 배우들도 같이 인기가 높아졌고 이들을 돈으로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에도막부(江戶幕府)는 온나가부키를 금지 시키자 미소년들이 공연하는 와카슈가부키(若衆歌舞伎)라는 것이 등장했는데 이 또한 동성간의 성매매의 온상이 되고 말았다. 당시 일본 무사 사회에서는 어린 미소년을 곁에 두고 성적노리개로 삼는 동성애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고 가부키에 등장하는 미소년들 역시 성적대상화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막부는 성매매의 대상이 되기 쉬운 여성과 미소년을 제외한 남성들만 무대에 오르도록 조치를 취하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가부키의 형태인 야로가부키(野郎歌舞伎)가 나오게 된다. 야로(野郎)라는 말은 남자들을 얕잡아 부를 때 쓰는 녀석이나 놈 쯤으로 흔히 해석되는 말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야로가부키의 성격이 금방 짐작이 될 것이다. 여자들은 없는 오직 남자들만의 가부키. 그게 지금까지 현대 가부키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그런 이유로 리엔의 아내는 있어도 리엔의 남편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철저하게 남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리엔에서의 여자 그리고 아내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의하면 그것은 몹시도 바쁜 매니저라고 말할 수 있다. 보통 하나의 가부키 집안에서 한달에 25일 정도 공연을 하는데 화려한 가부키 무대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쉬지 않고 일하면서 이 바쁜 스케줄을 지원하는 것이 리엔의 아내의 역할이자 사명이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가부키 집안은 하나의 집안이기도 하면서 일종의 연예기획사와도 같은 기업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배우인 남편의 매니저면서 비서로서 온갖 잡다한 일을 다 처리해야 하고 연습이나 공연 때의 식사 준비, 무대정리, 직원들의 급료정산, 밖으로 인사차 보낼 선물 준비, 스케줄 관리, 공연수입 정산 등등이 바로 리엔의 아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인기 가부키 배우의 아내로서의 품위도 잃지 말아야 하므로 다도나 예의범절 등등도 따로 익혀야 했으니 아마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가부키 집안에서는 신부감으로 동종업계의 다른 가부키 집안에서 나서 자란 딸을 선호했었다.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것이 그것이었으니 따로 배우지 않아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지와라 노리카(藤原紀香)처럼 리엔과는 전혀 상관없는 세상에서 살던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이 모든 것을 한번에 다 배워야 하는 가혹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노리카 뿐만이 아니라 적지 않은 수의 인기 여자 연예인들이 리엔의 아내가 되었는데 1991년 또 다른 유력 가부키 집안인 나카무라(中村) 가문에 시집갔던 미타 히로코(三田寛子)라는 여배우는 결혼하자마자 다도, 서도, 꽃꽂이, 예의범절, 에도(江戶)전통요리, 가부키의 역사, 집안행사진행법등에다 무려 200여 가지나 달하는 가부키 레퍼토리를 다 외워야 하는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리엔의 아내가 되다라는 표현 속에는 단순히 <가부키 배우와 결혼하다>라는 중립적인 의미보다는 이제까지 자유분방하게 살던 여자가 리엔으로 시집가서 잘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 어린 뉘앙스가 들어가 있는 셈.

 

   누구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폐쇄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더라도 이렇게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을 대대로 해오기 때문에 일본의 가부키가 전통 문화로서의 원형을 지켜오고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들도 17세기의 에도(江戶)가 아니라 21세기의 도쿄(東京)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전통과 현대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집안의 어느 좌장은 고집스럽게 옛것을 지키겠다고 선언을 하기도 하고 그 후계자는 새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타입의 가부키를 창안하려고 애쓰기도 한다.

 

   그렇다고 리엔이 그렇게 쉽게 바뀔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외부세계에서 리엔으로 들어간 아내들이 이런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리엔 생활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든 그렇지 못하든 그들은 분명 리엔과는 다른 문화적 DNA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느리긴 하겠지만 그들이 어떤 변화를 갖고 올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지금 리엔의 아내들은 지금은 몹시 바쁘고 또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