評論 世上

月刊 『시인동네』 2018年 7月號 揭載 (하이쿠(俳句)는 코끼리다.)(連載 4회).

김인숙로사 2018. 7. 3. 02:22

하이쿠(俳句) 제대로 읽기 (連載)

 

하이쿠(俳句)는 코끼리다. (連載 4)

    

김인숙

 

 

 

   일본의 라멘 체인점 중에 산토우카(山頭火)라는 곳이 있다. 꽤나 유명한 곳이라 도쿄나 오사카 같이 큰 도시에서는 거리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산토우카란 원래 육십갑자로 절기를 나타내는 말 중의 하나인데 이 라멘 가게가 이름을 빌려온 산토우카는 절기가 아니라 타네다 산토우카(種田山頭火: 1882-1940)라는 유명한 하이쿠 시인에서 유래한 것이다.

타네다 산토우카는 구마모토시(熊本市)에 있는 호우온지(報恩寺)라는 절에 출가했던 승려였었는데 글자 수에 얽매이지 않는 하이쿠의 작법과 평생을 걸인처럼 방랑하며 살았던 자유로움으로 유명하다.

라멘 체인점의 창업자가 산토우카라는 이름을 빌려온 것도 방랑벽이 있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자신의 스타일과 타네다 산토우카의 삶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어디선가 밝힌 적이 있다.

비교적 현대의 시간을 산 타네다 산토우카도 그랬지만 지금의 격조 높은 하이쿠를 완성했다고 칭송 받는 마쓰오 바쇼도 3번의 기나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시 세계를 확립했다. 덕분에 일본 사람들은 하이쿠라고 하면 자연과 자유로운 방랑이라는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게 하이쿠의 전부일까? 하이쿠 시인들은 전부 여행객들이었으며 그곳에서 만난 자연에 심취해서 시를 읊은 것일까? 그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지난 글에서 필자는 하이쿠란 서민들의 일상적인 언어유희에서 시작된 문학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우리들의 삶에 어떤 장르를 매길 수 없듯이 그 삶이 파생시킨 하이쿠 역시 사실은 어떤 장르나 카테고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하이쿠 하면 어떤 특정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평론가라는 필터가 사람들과 하이쿠 사이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김춘수가 노래했던 것처럼 아무 의미도 없던 것들이 이름을 불러주자 비로소 나에게 다가와서 꽃이 되었듯이 하이쿠라는 여러 갈래로 흩어진 시들이 일정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은 하이쿠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정의를 내린 평론가들과 그들의 하이쿠론(俳句論)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물론 평론가들의 이런 역할에 대해서는 찬반의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알기 쉽게 정리를 해 준 고마운 사람이라는 칭찬이 있다면 자신만의 독단으로 작품의 본질을 감췄다는 비난 역시 뒤 따라 오는 것이 평론의 세계다.

하이쿠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하이쿠의 자연친화적 이미지를 쌓아 올린 이는 바로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1867-1902)라는 평론가였다. 그 자신이 하이쿠를 직접 쓰는 시인이자 평론가이자 문학연구가였던 마사오카 시키는 감각적이고 미학적인 시각으로 하이쿠에 접근하여 하이쿠의 함의된 시어들이 나타내는 정제된 미의식을 발견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마사오카 시키의 이런 자연주의적 시각 때문에 하이쿠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주장한 다른 평론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스즈키 다이세츠 (鈴木大拙: 1870-1966)라는 인물이었다.

스즈키 다이세츠의 하이쿠론의 특징은 하이쿠를 선불교와 참선이라는 종교행위에서 얻어진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었다. 문학연구가인 마사오카 시키와는 달리 스즈키 다이세츠는 불교학자였으니 하이쿠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마사오카 시키가 그랬듯이 스즈키 다이세츠도 마쓰오 바쇼를 하이쿠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들어 물소리 첨벙>을 하이쿠의 역사를 바꾼 詩句로 칭송하고 있다. 다이세츠의 말을 빌리자면 이 작품 이전의 하이쿠는 마쓰오 바쇼의 작품 조차도 단순한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발표되면서 하이쿠의 진정한 예술성이 드러났고 그 배경엔 참선을 통한 선불교적 깨달음이 있다고 한다.

    

  마쓰오 바쇼는 지금의 도쿄(東京)인 에도(江戸)에서 살던 당시 부쵸오 화상 (仏頂和尚:1641-1715)이라는 임제종 승려에게 불법을 배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사원들의 사회적 역할이 불법 포교라는 종교행위 이외에도 한문이나 유교 경전, 중국 고전 등을 가르치는 학교의 역할도 했었기 때문에 승려의 지도 아래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이 반드시 불법에 귀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사오카 시키는 마쓰오 바쇼가 부쵸오 화상아래에서 중국의 노장사상을 배웠다고 주장한다. 바쇼의 자연관이 장자의 사상과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스즈키 다이세츠는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들어 물소리 첨벙>이라는 詩句가 부쵸오 화상과 마쓰오 바쇼 사이에 오고 갔던 선문답에 나왔던 말을 따서 지어진 시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어느날 부쵸오 화상이 마쓰오 바쇼에게 오늘은 어떠했느냐?”고 물어보았다. 이에 대해 바쇼는 비가 개고 나니 푸른 이끼에 윤기가 더 흐릅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에 부쵸오가 푸른 이끼가 나기도 전의 이 세상엔 어떤 불법이 있었을까?”라고 다시 묻자 바쇼는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가 있었을 겁니다.”라고 답하였다.

불법의 깊은 뜻을 단 한자라도 깨치기 힘든 우리 같은 범인들이 짐작하기엔 참으로 어려운 대화지만 후세의 사람들은 이 대화를 이 세계가 태어나기도 존재했던 것이 무엇이냐는 부쵸의 질문에 바쇼가 고요한 수면위에 개구리가 만들어내는 찰나의 파장같은 깨달음, 천지를 깨우는 하나의 소리가 있었노라고 답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다이세츠는 하이쿠의 詩句는 어떤 이론이나 논리로 해석되는 게 아니라 선불교적 참선에 의한 직관의 산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바쇼가 직관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일까? 다이세츠에 의하면 그것은 우주적 무의식이었다. 우주라는 말이 나오니까 너무나도 거창하게 들리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의식에는 몇 개의 층위가 있다. 우리가 흔히 개인적인 레벨에서 말하는 무의식. 그리고 개인적 무의식의 아래에서 기초의 역할을 하는, 불교적인 용어를 빌리자면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부르는 집합적인 무의식이 있다. 이 아뢰야식의 기저에 깔려 있는 보다 더 기초적인 무의식이 있는데 다이세츠는 이것을 우주적 무의식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삼라만상이 공유하는 가장 원자적인 단위의 무의식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이 우주적 무의식은 의식의 표층 위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논리로 설명이 되지 않고 오직 직관으로만 파악이 되는데 이것을 작동시키는 힘이 선불교의 깨달음이다. 다이세츠는 마쓰오 바쇼가 이런 선불교적 메시지를 일관되게 지키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바쇼의 또 다른 대표작 중에 <곧이어 죽을 풍경이 안 보이는 매미의 노래 (やがてぬけしきはみえず >라는 작품이 있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인생은 무상한 것인데 속세의 사람들이 이를 모르고 매미가 곧 죽게 될 운명인 것도 모르고 울어대는 것처럼 인생을 허망하게 보낸다는 도덕적인 경고라고 흔히들 해석을 한다. 인생무상. 詩句만 놓고 봐도 바쇼의 메시지가 불교적이라는 해석에 어느 정도 수긍은 하게 된다.

다이세츠의 말대로 하이쿠의 모든 작품이 불교적이었을까? 그것은 알 수가 없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불교적이었는지는 더더욱 알 길이 없다. 라멘 가게 산토우카 체인점의 창업자는 하이쿠로부터 자유와 방랑의 의미를 읽었다. 마사오카 시키는 모더니즘처럼 극도로 정제된 미의식을 5-7-5의 열일곱 음으로부터 찾아냈다. 스즈키 다이세츠는 찰나를 노래하는 한 줄의 詩句로부터 부처의 모습을 읽으려고 했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듯 서로 다르게 드러나는 것. 하지만 그 장님들이 서로 모여 한 마리의 제대로 된 코끼리를 그려내고자 노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두툼한 다리로, 누군가에게는 길고긴 코로, 누군가에게는 펄럭이는 큰 귀로 이해가 되는 것. 그리고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즐기는 것. 그게 바로 하이쿠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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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 * 2012月刊 現代詩學등단

            * 2017季刊 시와세계評論등단

            * 6한국현대시협작품상 수상

            * 7회 열린시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