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홍배 시인과 떠나는 추억의 간이역 / 장항선 (제1회)
배홍배 시인과 떠나는 추억의 간이역
장항선 (제1회)
-서해의 우울
안개 낀 새벽 영등포역을 출발하는 장항행 통일호 열차는 은밀한 성욕으로 충혈된 도둑고양이처럼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배회하듯 도심을 빠져나간다. 열차의 보행은 과장된 정숙함 속에 완벽하게 은폐될 뿐 교외로 향한 철길 가 가옥들의 긴장한 불빛이 파르르 떨며 낮게 엎드린다. 오늘이 가면 생의 변두리에서 속도에 마취된 가난한 자들의 욕망을 실어 나르던 낡은 열차는 한 줄의 역사로 돌아가는 오십여 년의 시간과 더불어 더 이상 기억할 것도 후회할 것도 없는 형벌의 벌판에 속도의 빈 노트로 버려지리라. 누구의 속도에라도 얹혀 빈 페이지를 펄럭일 날은 다시 올 것인지, 열차는 천안을 돌아 모산과 온양 신창을 지나고 역사(驛舍)도 역무원도 없는 선장역의 보라빛 아침 공기를 날카롭게 할퀴며 정거한다. 찢어진 공기 틈으로 몇 사람의 승객이 터무니없이 짧아져버린 객차 안으로 주르르 흡입되고 열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뒤뚱거리며 달리기 시작한다.
역사(驛舍)가 없는 간이역은 스스로 존재를 증명해보이지 않는다. 기차가 서기 전까진 아무도 이곳이 간이역인지 모른다. 이곳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승강대의 몇 줄 붉은 벽돌 위에 딛는 발자국만큼 도시의 일부분을 전원으로 옮길 뿐 자신은 결코 전원의 일부가 되거나 전원에 속하지 못한다. 그들은 도시에도 전원에도 속하지 못하는 영원한 유랑자로 남아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만의 가장 쓸쓸한 기억으로 돌아가는 완행열차에 삶의 향수를 실어 보내며 오랫동안 그리움과 외로움의 후유증을 앓는다. 이들은 나의 렌즈 안에서 그리움과 외로움 사이에 흔들리는 들꽃이다. 들꽃은 익명성이어서 우리가 그 이름을 기억할 수 없을 때 카메라의 기하학적 경직성으로부터 탈피하여 이곳 무인(無人) 간이역 배후로서의 몽환의 이미지로 탄생한다.
주포역에서 한 무리의 낚시꾼들에 떠밀려 열차에서 내렸을 땐 아직 아침 이른 시각이었다. 지나가는 버스에 올라 무창포로 향한다. 차창 밖으로 드라마 세트장처럼 부실한 가옥들이 스쳐 지나가고 색 바랜 양철 지붕들보다 오래됐을 것 같은 살구나무들이 벌써 여기저기 꽃망울을 터트렸다. 아직 쌀쌀한 바람이 살 속을 파고드는데 우리나라의 봄꽃들은 왜 그리 성급한지, 한길 가의 초라한 국밥집 슬레이트 지붕 위로 공룡 뼈대처럼 울퉁불퉁한 가지를 뻗어 지붕을 온통 꽃으로 덮은 늙은 살구나무를 바라보며 나는 얼굴과 가슴을 가만히 만져본다. 딱딱하게 만져지는 뼈끝에서 내 유년의 봄에 대한 비애를 느끼며 나는 살구나무의 성급함에 대하여 그저 이해할 뿐 도덕적 결론은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비애의 본성은 악마적인 것이어서 버스가 요철이 심한 곳을 통과할 때 내 얇은 턱 속에 숨어있는 비애가 딱딱 마주치고 그때마다 길가의 어린 봄풀들은 전율하며 쓰러진다.
그해 봄 건조주의보가 내려
나는 마른 풀처럼 말라갔다.
앵두나무는 서둘러 열매를 맺고
노란 빈혈을 앓았다
보리가 깜부기를 가득 피워
지붕을 덮으면
헛간 위로 물먹은 달이 떠오르고
내 얼굴도 누렇게 떴다
귓속에선 쑥새가 포르르 울었다
흙탕물에 얼굴을 담근 채
미나리를 심는 어머니
아침에 눈을 뜨면
식구들의 얼굴은 미나리꽃이었다
미나리,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해
고개 수그린 꽃
등에 잡풀을 지고
일어서지 못하는 아버지의 꽃
한참 동안 버스가 달리자 구름과 바다가 맞닿은 끝없는 수평선이 눈에 들어온다. 버스는 무기적인 상상력에 의해 구름과 바다가 이루는 비현실의 접경지대를 교활하게 드나들며 구불구불 좁은 길이 끝나는 곳에 멈춘다. 무창포의 해안선은 동해안처럼 화려한 기암괴석과 웅장한 자태, 현란한 물보라로 자신을 꾸미지 않는다. 자신의 내부를 결코 드러내 보이는 법이 없이 태초 이래로 언제나 그래왔듯 순한 짐승처럼 정적에 순응하며 조용히 갯벌과 일몰을 키워왔다. 이곳의 갯벌은 어머니의 자궁처럼 깊고 습해서 신생의 뭇 생명들에게 젖줄을 물리며 시간의 이쪽과 저쪽에게 온안한 용서의 밀물과 썰물의 개입을 허용한다.
방파제 옆에 조개를 파는 할머니들이 생면부지의 외래객을 반긴다. 미리 몇 마디 양해를 구하고 그들에게 카메라를 겨눈다. 나의 렌즈 안에선 밝고 반짝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낡고 오래된 것일수록 생명력을 얻는다. 주름투성이의 얼굴은 많은 사연을 말해주는데 아픈 사연이 많을수록 상상력으로 단련되어 강인해 보인다. 꼭 다문 입술은 그들이 아직 다 말하지 못한 절대적인 침묵을 지키는 성문이다. 렌즈 안에서 그들의 미간은 바다만큼 넓고 눈망울은 물빛처럼 푸르다. 투명한 귓바퀴는 바닷가 고운 모래사장을 품고 있어서 그 안에 유장한 파도소리가 이리 저리 구를 때 그들의 얼굴은 거대한 대양의 풍경 속에 떠 있는 하나의 섬이다.
몇 년 전 이맘때 사랑하는 사람과 이곳에 내려와 밤의 해안선을 거닐던 적이 있었다. 그날 밤 그녀는 사랑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했고 나는 우리 사이에 말이 오갈수록 불안을 느꼈다. 사랑은 침묵이다. 사랑은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 충만된다. 침묵은 죽음의 세계다. 따라서 사랑 안에서 바라보는 죽음은 따뜻하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한번 쯤 죽음을 꿈꾸는 것은 죽음이 사랑의 기적을 동반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사랑은 누구에게도 감독되거나 억압당하지 않는 정신의 세계다. 아무도 들여다 볼 수 없는, 들여다봐서는 안 되는 위험한 세계를 내가 들여다보고 말았을 때 근처 독립가옥의 개가 우릴 향해 심하게 짖어댔다. 나는 지금 그 때의 독립가옥 근처를 배회하고 있다. 어디선가 개가 한 마리 쫓아 나와 컹컹 짖는다. 지금 저 개가 그 때와 동일한 놈인지는 관심이 없다. 다만 놈이 나의 얼굴에 나타난 낯선 난폭함에 제압당해 뒷걸음질하는 순간 나는 인간이 동물로서 이 세상에 등장하고 언어를 사용하기 전 우리 인간에게 위탁된 자연의 포악성을 스스로 발견해 내고는 공포에 질려 부르르 떨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