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廣場

季刊『 시와소금 』2014年 가을호號 揭載. 波紋의 향방 / 에스프리(나는 언제나 기차표를 산다)

김인숙로사 2016. 1. 22. 16:22

波紋의 향방

 

김인숙

 

 

 

삶은 계란껍질을 벗기다 가끔 손끝을 다친다

 

이동가판대에서 계란 세 알을 산 그녀,

젖은 기침을 안개 같이 내뱉으며

낯선 손에 계란 봉지를 건네주고 말없이 자리를 떴다

 

그 차가운 기억,

흩어진 퍼즐처럼 삐걱거리는 불안이 손끝을 타고 올랐다

끝내 그림은 완성되지 않았다

밭은기침에도 흔들리던 가냘픈 어깨,

흐린 간판 밑 스산한 간이역에

헝클어진 마음만 두고 왔다

 

가끔 표를 사들고

시간 속에 찍힌 그 간이역으로 되돌아가면

기호 같은 나뭇가지가 스치는 차창

계란껍질과 빵 봉지 몇 개가 흩어질 때

눈꺼풀이 감기는 열차 안에 내가 앉아있었다

 

기억의 서랍장에 접힌 짧게 스쳐간 예감

그 간이역 간판 밑으로 자꾸 흩어지고 조립되는 순간들,

 

간이역이 나를 끌고간다

나 또한 간이역이었다

 

 

 

 

 

 

<‘파문의 향방’ 에스프리>

 

나는 여전히 기차표를 산다

 

김인숙

 

 

 

 어쩔 수 없이 흘려보낸 시간이 있다. 어쩌다보니 떠나와야 했던 공간도 있다.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란 대부분 한없이 제로로 수렴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습관적으로 떠나버린 것들을 그리워한다. 그런 그리움이란 대부분의 시간을 철지난 열병마냥 피부 깊숙한 곳에서 잠복하며 지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끔은 조그만 자극에도 움찔거리며 표피 밖으로 튀어오르기도 한다. 그것을 예측하고 회피할 방법은 없다. 언제나 당하고 나서야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가끔씩 계란껍질에 손을 찔린다. 차갑게 식은 계란껍질, 손끝을 찌른 조각들을 덜어내며 나는 어느 날의 시간과 공간을 추억한다. 규칙적으로 끊어진 선로의 이음매를 따라 덜컹거리던 낡은 객차, 희뿌연 차창으로 새어 들어오던 힘없는 겨울 햇살, 그 햇살을 등진 채 너울거리던 긴 그림자들, 그 사이를 삐걱거리며 지나가던 이동가판대의 바퀴, 그날의 나는, 나는 시트 깊숙한 곳에 몸을 묻고선 그런 풍경이 빚어내는 고독을 세고 있었다.

 

우리는 여행에서 꿈을 보길 원한다. 하지만 모든 여정이 꿈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하얗게 얼어버린 차창아래서 기대가 아닌 불안의 입김을 내불어야하는 순간도 존재한다. 그렇게 떠나는 길은 대체로 손을 베일 정도로 비정하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허무하며, 숨쉬기 힘들 정도로 쓸쓸하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마주쳤던 사람들의 기억은 마치 잘게 부서지는 계란껍질처럼 무기질적이기까지 하다. 나 역시 스스로의 시간을 가둔 채 다른 여행자들의 고독을 세고 앉아있었다.

 

 ​그렇게 닫혀있는 나의 공간 속으로 손을 내민 것은 어느 낯선 여인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건네 준 검은 비닐봉지,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던 삶은 계란 세알, 그녀는 자신의 여행이 끝났다는 것을 선언이라도 하듯 두 손을 털고 일어나 허름한 간이역에 내려섰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가, 그녀가 내려선 간이역의 건물이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계속 응시했었다. 정말로 그녀의 여행은 끝이 난 것일까? 그녀는 그 간이역에서 날개를 접은 것일까? 어디에서 돌아오는 걸까. 그녀도 나처럼 아무도 없는 곳에 심장을 묻으러 떠났던 것일까? 그녀도 나처럼 아무도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헝클어진 시간을 쏟아버리고 돌아온 것일까? 아니, 그 반대일런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는 그 곳으로 돌아온게 아니라 이제 떠나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기차표를 산다. 그리고 그때 그 낯선 여인을 추억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으면서도 거울의 건너편에 앉아있는 듯 비현실적이었던 그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시간 속에 파문을 그린 후 열차에서 내렸다. 나는 변함없이 시트에 앉아있고 언제나 그렇듯 타인의 고독을 세고 있으며 어딘가에서 사그라들었을 시간의 파문을 찾아 헤매고 있다.

 

 ​여전히 어느 역에서 내려야할지, 언제 자리에서 일어서야할지, 나는 아직 알지못한다.

 

 

* 2012年 月刊『現代詩學』新人作品賞 受賞 登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