隔月刊 『시사사』 2015년11月 -12月號 揭載 안희연시집(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가능한 통조림)詩評
안희연시집『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가능한 통조림 _ 안희연
묻을 것이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와요 나는 홀로 테이블을 지키고 앉아 목록을 작성합니다 축 늘어진 고양이를 안고 와서 불이 꺼졌다고 말하는 것 나는 대답 대신 검은 고양이라 적습니다 컨베이어 벨트는 쉬지 않고 돌아갑니다
오후에는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통조림을 하나둘 꺼내봐요 뚜껑을 열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눈동자들, 나는 팔꿈치와 무릎을 만지작거리며 내 몸이 들어갈 만한 커다란 통조림을 상상하죠 아름다운 불속에서 아주 잠깐 낮잠을 자는 거예요 얼굴이 다 녹아내릴 때까지
어깨를 두드리기에 돌아보면 새하얀 커튼이 흔들리고 손이 닿지 않는 선반 위에도 잠들은 가득합니다 머리끝까지 지퍼를 올려 닫은 나무들 그림자만 덩그러니 앉아 있는 화단에선 꽃들의 목이 뚝뚝 잘려나가지만 이제는 벽돌 위에 벽돌을 얹듯이 창밖을 바라볼 수 있어요 새들은 새장 속에 있을 때 가장 멀리까지 날아가고
나는 천장까지 쌓여 있는 통조림을 보면서 이리저리 몸을 접는 연습을 합니다 물속에서 녹고 있는 물고기의 자세를 상상하면서 영원한 잠에 빠진 오필리아가 되어 이곳에서 걸어 나갈 아침을 기다려요 그러나 오늘은 몸 밖으로 뼈를 꺼내 입은 일요일 묻을 것이 있는 사람들은 성벽처럼 줄지어 서 있고 나는 보이지도 않는 의자에 꼼짝없이 묶여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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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알 수 없는 개운함과 완결된 내러티브 발견
김인숙(시인)
안희연 시인의 첫 시집『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2015. 창비)는 짧고 진하게 축약된 문장으로 이루어지는 시라는 장르에서 물리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의 서사를 완성시키는 시적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같은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그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완결된 서사를 이루어낸 안희연 시인의 시를 읽어가면서 놀라움과 부러움과 약간의 질투,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개운함과 완결된 내러티브를 발견한 쾌감마저 동시에 느끼게 된다.
안희연 시인의「가능한 통조림」은 그런 완결된 서사를 지닌 작품이다. 무엇인가가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와 미로 같은 길을 통과한 후 처연할 정도로 담담하게 이야기 밖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어느 삭막한 숲속에 버려져 있을 것만 같은, 기왕이면 칙칙한 적벽돌로 지어져 있을 것 같은 통조림 공장. 시인은 그 곳에서 생산되는 통조림이라는 완벽한 기밀성을 지닌 장치. 이 장치가 가진 은밀함을 시인은 영악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
삽을 들고 땅을 판 후 무언가를 덮어버리는 “묻는다”라는 행위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자.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 들키고 싶지 않은 무엇인가를 감춘다는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것들은 묻힘으로써 남들 눈에 띄지 않게 되고 그렇게 세상과 격리됨으로써 나에게 안도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얕게 판 무덤이 언젠가는 썩어 문드러진 시신을 세상밖에 내놓듯 어딘가에 묻어둔 나의 은밀함은 언제 세상에 들통 날지도 모른다는 태생적인 불안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 불안감의 공기를 제거하여 완벽한 진공상태로 만드는 장치. 그것이 바로 통조림이다. 게다가 그 통조림은 쉬지 않고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실린다. 이미 산업화 되어버린 개인의 은밀함. 묻을 것을 가지고 온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안도감이 겨우 몇 개의 시어를 통해 완벽하게 구현되고 있다.
“오후에는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통조림을 하나둘 꺼내봐요 뚜껑을 열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눈동자들”
그렇게 통 안에 조려진 은밀함은 완벽하게 유기된다. 산기슭에 묻은 비밀스런 시신과는 달리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되기까지 한다. 누군가가 통조림을 꺼내 본다 하여도 그 안의 내용물을 짐작할 수는 없다. 이미 산업화된 기밀성은 모두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익명성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들은 고독을 두려워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가 되는 것을 무서워하고 하루 종일 입 벌릴 일이 없는 메마른 시간에 몸서리친다. 하지만 그렇게 고독을 거부하는 가면 뒤에는 처절할 정도로 완벽하게 고립된 순간을 그리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
시인은 그런 욕망의 머리와 꼬리를 정확하게 한 선으로 그려냈다.
안희연 시인의 공장에는 그런 통조림이 천장까지 쌓여 있다. 그 사이를 지나가기 위해서는 이리저리 몸을 접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수많은 깡통들이 쌓여 있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자신은 깊은 잠에 빠진 오필리아가 되어 그 곳을 빠져나가는 꿈을 꾸지만 그 꿈이 가질 현실성은 멀고도 또 멀기 만하다. 세상이 그렇게 하라고 내뱉은 말들의 뒤만 쫓는 오필리아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는데 성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탈출을 꿈꾸는 통조림 공장의 아침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바깥에는 오늘도 묻을 것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성벽처럼 줄지어 서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고독은 끝이 없고, 그것을 유기하고자 하는 욕망은 멈추지 않으며, 그것을 실어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 역시 쉬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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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 * 2012년 月刊 『現代詩學』 詩등단
* 제 6회 『한국현대시협』 작품상 수상
* 제 7회 열린시학상 수상